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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르호프스타트 벨기에 총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기 베르호프스타트 벨기에 총리는 26일 중앙일보에 반(反)세계화를 비판하는 기고문을 보냈왔다.

기고문의 내용은 유럽연합(EU)순번 의장을 맡고 있는 베르호프스타트 총리가 지난 7월 주요 8개국(G8) 제노바 정상회담에서 반세계화 시위를 목격한 뒤 G8 체제 개편 등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밝힌 것이다.

다음달 30일 벨기에 겐트 대학에서는 이 내용을 토대로 토론회가 열린다. 벨기에 총리실은 주한 벨기에 대사관을 통해 "전세계 50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에서 가장 유력한 한개 언론사를 선정, 동시에 게재를 부탁한 것" 이라고 밝혔다.

시애틀.예테보리.제노바에서 수만명의 사람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진정한 신선한 공기를 만끽했다. 우리는 그들이 무의미한 폭력만 휘두르지 않았으면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반세계화 세력은 우리들의 정치적 삶이 무뎌졌거나, 빈약해졌거나, 기술주의에 몰입됐을 때에는 환영받을 수 있는 반주류적 경향이다. 실제로 이 반주류적 경향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가 과연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갑자기 그들이 세계화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까지 진보적인 지식인들조차 국경을 초월한 시장이, 가난과 쇠퇴만이 남아 있던 국가들에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입을 모아 칭송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옳았다. 경제 개방도가 1% 늘어날 때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씩 증가한 것이 그동안의 경험으로 입증됐다.

물론 국경을 상관하지 않는 하나의 운동으로서의 세계화는 자칫 "국경없는 이기주의" 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부유한 서방세계의 입장에서 자유무역은 서구경제에 해를 가하지 않는 한에서는 흔쾌히 포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의심을 하는 반세계화 지지자들이 드러내고 있는 몇가지 모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들은 미국의 햄버거 체인을 거부하고, 다국적기업에 의해 유전자가 조작된 콩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구매습관에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브랜드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모든 것이 소규모로 국지화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민문제를 살펴보면 상황이 다르다.

세계화는 이미 목표가 돼버렸다. 수많은 부랑자들이 번영된 사회의 상점 진열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유럽과 북미의 여러 국경지대를 떠돌고 있다.

세계화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에 관대해질 것을 강력히 촉구해 왔다는 것은 또하나의 모순이다. 우리는 분명히 세계화 과정으로 가는 다문화적이고 포용력있는 사회 안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살던 편협한 사회에 대한 향수는 과거를 찬미하는 보수주의자, 자신들의 인종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고 있는 극우파, 성경이나 코란에 죽고 사는 광신도들만이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화 반대주의자들은 많은 올바른 질문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지구 온난화나 세계기후의 변화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전지구적 노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모든 사람이 빈곤한 나라를 위해 자유무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자유무역은 전세계에 통용되는 경제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길은 대규모의 단일통화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이 곧바로 세계화에 반대하는 의식을 만든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빈곤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고 세계화로 인한 분명한 이득을 얻는가 하는 것이다.

한번 더 말하지만 반세계화 세력들의 우려는 극히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타당한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찾는 일은 곧 세계화를 더욱 진행하는 일이다. 제임스 토빈의 견해도 이와 일치한다. 이것이 바로 반세계화의 모순이다.

세계화는 결국 '악의 원인' 이 되는 만큼 '선의 원인' 역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환경.노동문제.통화정책에 대한 윤리적 접근이다.

즉,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은 어떻게 세계화를 저지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세계화의 윤리적 기초를 세우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윤리적 세계화' 로 부르고 싶다. 이는 자유무역.지식.민주주의로 이뤄진 삼각형, 또는 그 대안으로 무역.원조.분쟁 방지의 삼각형으로 이뤄진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은 폭력과 전쟁을 방지하는 방법이자 무역과 번영을 성취할 수 있는 지속적 방법이다. 세계공동체는 아직 소형무기의 세계적인 금지 혹은 영구적인 국제 형사법원 설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부유한 서방국가로부터의 원조도 증가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12억명이 넘는 인류가 의료혜택이나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무역만으로는 후발개발국이 당면한 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세계무역은 보다 자유화를 필요로 한다.

만약 모든 시장이 전적으로 개방돼 경쟁을 한다면 개발도상국들의 연간 소득총액이 현재 받고 있는 전체 개발원조금액의 14배인 7천억달러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서구의 잉여농산물을 제3세계에 덤핑으로 넘기지 않아도 된다.

또 바나나.쌀.설탕 등을 자유무역의 예외로 두지 않아도 된다. 유일한 통상 제한이 있다면 무기에 관한 것일 게다.

더 활발한 자유무역.민주주의.인권존중.개발원조, 이것들만으로 윤리적 세계화를 현실화하는데 충분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강력한 기구가 빠져 있다. 우리가 이미 살고 있는 세계화된 시장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세계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부유한 국가들의 모임인 G8은 현존하는 지역적 파트너십에 기초한 것으로 대체돼야 한다. 이는 빈곤국들에 경제의 세계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해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G8은 노동조건.지적재산권, 그리고 이상적 통치에 대한 포괄적 윤리기준을 포괄하는 구속력있는 기구가 될 수 있고 또한 그러한 기구여야만 한다. 동시에 이 새로운 G8은 세계무역기구(WTO).세계은행과 같은 주요 국제기구 및 협상기구들에 지침을 제공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G8이 윤리적 세계화를 시작하기 위해 첫 회담을 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유럽의 뒷마당에서 이를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상의 가장 빈약한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서 유럽연합(EU)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검토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어떤 결정이 부유한 국가들과 빈곤한 국가들간의 간격을 넓히거나 좁히게 되는 것인지, 생태학적 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고차원의 비유럽 기구로부터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니제르강 삼각지의 오고니족 사람들의 운명이나 코스타리카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들의 수입보다 다국적 정유회사나 유럽의 사탕무 재배농가의 이익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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