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축하대신 오물 세례' 받은 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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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나가서 맞을 일 있나. 그냥 돌아갑시다. "

삼성 김응룡 감독은 지난 25일 사직구장에서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은 뒤 그라운드에 당당히 나서지 못했다. 김감독의 인터뷰는 경기장 한쪽 구석에 있는 선수대기실에서 쫓기듯 진행됐다.

삼성-롯데전이 끝난 뒤 삼성 더그아웃은 아수라장이었다. 30~40여명의 선수단과 기자들이 뒤엉켜 발디딜 틈도 없었다. '갇혀 있었다' 는 것이 정확했다.

14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되찾은 삼성 더그아웃에는 꽃다발 대신 각종 오물과 반입이 금지된 술병까지 날아들었다. 심지어 극성팬은 그라운드에 뛰어들기도 했으나 경기장에 배치된 경찰 50여명과 사설 경호원 10명으로는 이들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기념촬영을 하자는 삼성 구단 관계자의 설득에 철수하려던 삼성 선수들은 경기 후 15분 뒤 2루 베이스 근처에서 날아오는 물병 세례를 피해 겨우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이에 자극받은 5백여명의 롯데 팬들이 경기장 정문을 가로막아 삼성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1시간쯤 불꺼진 그라운드에서 대기하다 다른 출입구를 통해 몰래 빠져나갔다.

성숙한 관중 문화가 아쉬웠다.

물론 지난 18일 삼성전에서 롯데 주포 호세가 빈볼 시비 끝에 퇴장당한 터라 롯데팬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욕설.오물 던지기로 이어지는 일부 관중의 행태는 어떤 식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관중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롯데 구단의 소극적인 대처도 소란을 확대시켰다.

한 국내 야구인은 "미국에서 야구는 오락이고, 일본은 종교며, 한국은 전쟁이다" 고 말했다. 우리도 이제 살벌한 야구판 풍경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김종문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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