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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금리 4%-대출금리 6%대 언제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전혀 경험하지 못한 낮은 금리라서 거래하기가 겁이 납니다. "

한 채권딜러는 최근 거의 매일 낮아지는 금리를 '신(新)금리' 로 불렀다. 지난 19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격적인 콜금리 인하의 영향을 받아 한때 전날보다 0.26%포인트 떨어진 4.64%에 거래됐다.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어느 새 연 4%대로 낮아졌고,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6%대에 머물고 있다. 연초보다 금리가 2%포인트 떨어졌는데 기업.가계.금융기관 모두 금리의 향방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 금리 더 내려갈까=단기적으론 미국의 보복 전쟁이 관건이다. 테러로 인한 시장불안 심리를 억제하기 위해 이미 한차례 금리를 내린 미국이 보복전쟁으로 인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또 금리를 내리리란 전망이 유력하다. 이 경우 한국도 금리를 더 내려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성철현 LG투자증권 채권팀장은 "미국 테러사태 이후 나빠질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모든 나라가 금리를 낮추는 추세고, 우리나라도 더 이상의 경기침체를 막아야 할 입장이라서 금리가 더 내려갈 여지가 있다" 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론 경기 침체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금리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률이 3분기에 0.5% 수준에 그쳐 연간으론 3%를 밑돌고, 내년 상반기까지 경기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진 기업의 자금 수요가 살아나지 않아 초저금리 상황이 이어지리라는 분석이다.

◇ 초저금리의 부작용 나타나나=전문가들은 물가상승률이 4%를 넘고, 경제성장률을 아무리 낮게 잡아도 2%가 넘는 상황에서 4%대의 시중 금리는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적정 금리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합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금리가 낮아지는 것은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이며, 이에 따라 초저금리 속에서도 장기 불황에 허덕이는 일본과 같은 길을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원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저금리 정책이 앞으로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신호로 작용해 금리하락이 당연한 일로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 며 "금리를 계속 낮췄는 데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일본과 같은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의 금리인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의 금리차는 2000년 7월 2.1%포인트에서 1%포인트로 좁혀진 상태다. 따라서 미국이 금리를 더 내리더라도 물가상승률이 높은 한국의 시장 여건으론 콜금리를 추가로 낮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방황하는 시중자금=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4%대에 진입하면서 고객들이 1억원을 맡겼을 때 세금을 제외하고 실제 쥘 수 있는 이자소득은 한달에 34만원(연간 4백10만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0.1%포인트라도 수익이 많은 곳을 찾아 맴도는 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현재 시중을 떠도는 단기 부동자금은 3백조원으로 추산된다.

10월부터 만기가 닥치는 비과세 가계신탁.저축 21조원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관심거리다. 1996년 10월부터 한시적으로 판매된 비과세 가계신탁.저축은 정기예금보다 금리가 높고 3년 이상 갖고 있을 때 비과세 혜택이 있었다. 이번에 만기가 닥치면 장기성이었던 이 자금이 대부분 고수익을 좇아 떠돌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안철수연구소의 청약에 2조원이 몰렸고, 서울의 주상복합건물 분양에 수천억원의 예약금이 들어오는 등 이미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금융기관들도 돈을 빌려달라는 기업이 줄어든 탓에 몰려드는 예금을 마땅히 굴릴 데가 없어 국고채와 회사채 등에 투자하는 실정이다. 돈이 금융시장 안에서만 뱅뱅 맴돌면서 금리만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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