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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가 ‘通’하는 세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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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34면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ㆍ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 금융도시인 홍콩에서는 올 6월까지 소폭의 위안화 절상이 있을 것이라고 점친다. 미ㆍ중 간 위안화 절상 협상이 일단락됐다는 판단이 대세인 것 같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11.9%를 기록했다. 홍콩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올해 성장률을 10%대로 상향 조정했다. 몇 년 전 골드먼삭스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030년대 후반께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지금 추세라면 그 시기가 앞당겨질지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과 독일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엔화와 마르크화는 국제기축통화로서 등장했다.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위안화가 중국의 경제성장세를 타고 국제통화로서의 기능이 보다 제고된 현실을 목격할 것 같다. 이제부터는 ‘위안화 절상’이 아니라 ‘위안화 국제화’가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짚어볼 필요가 커졌다.

중국 정부차원에서 ‘위안화 국제화’를공식 정책 목표로 제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물밑에선 점진적인 행보로 해석될 조치들이 잇따랐다. 우선 중국은 2020년까지 상하이를 국제금융센터로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지난해 4월부터 홍콩·마카오·상하이·광둥성의 4개 도시 간에 위안화 무역결제를 허용했다. 윈난성과 광시자치구,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간에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이어 2008년 12월부터 한국·홍콩·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벨라루스 등 6개국과 총 6500억 위안(RMB)에 달하는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제2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4월 16일)에서는 교역ㆍ투자 분야에서 자국 화폐 사용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에게도 중국 내 원자재 조달이 전체 제조원가의 50%를 넘어선 마당에 미 달러화로 수출대금을 받아 위안화로 근로자 임금과 원자재 조달비용을 지불해야 돼 그동안 적지 않은 환(換)리스크를 감당해 왔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상을 겪는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중국 입장에선 위안화의 국제화가 진전된다면 첫째, 해외의 원유와 자원ㆍ원자재를 위안화로 사들일 수 있어 더 이상 달러화를 과도하게 보유할 이유가 없어진다. 둘째, 중국이 개도국에 위안화 차관을 줄 수 있게 돼 국제사회의 달러ㆍ유로화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다. 셋쩨, 미ㆍ중 간에 환율 절상 논란 및 환율 조작국 시비도 사라질 것이다.

반면 중국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중국으로선 통화정책 운용 시 지금까지 국내 요인만 고려하면 됐다. 하지만 위안화 국제화 시대에는 외부 충격을 완충 장치 없이 받아들여야 된다. 또 위안화가 국제 유동성 있는 화폐가 되려면 미국이 경상ㆍ자본수지 적자를 유지하면서 달러화를 공급해온 것처럼 중국 역시 무역ㆍ자본수지를 적자 상태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 역시 중국의 실업률 증가 요인으로 작용해 정치적인 부담이 클 것이다.

끝으로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자본계정의 개방, 완전 태환 화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은 국제 핫머니로부터 중국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자본이동 통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위안화의 국제화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어 중국 정부가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한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은 홍콩을 위안화의 역외시장으로 키우면서 위안화 국제화를 본격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 중국의 부상을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등장’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보아야 한다. 작금의 국제 경제 상황은 ‘중국의 르네상스’로 불러도 될 것 같다. 우리 정부ㆍ기업ㆍ금융기관들도 세계 경제의 역학관계 변화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져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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