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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쌀정책 전환, 추진이 문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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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어제 내놓은, 증산정책의 사실상 포기를 골자로 하는 중장기 쌀산업 대책은 현재의 우리 농업, 그리고 주곡(主穀)인 쌀을 둘러싼 안팎의 환경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밖에 없다.

쌀문제는 소비를 웃도는 생산으로 심각한 재고 누증에 처해 있고,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와 재협상을 앞두고 시장개방에 대한 사전 정비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쌀이 갖는 주곡으로서의 위치와 정치적 민감성에 비춰볼 때 현 정부와 다음 정부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쌀정책 전환도 그것이 현장에서 잘 집행되려면 충분한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걱정은 정부가 과연 그래왔고 그럴 준비 자세를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쌀 과잉문제가 대두된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닌데 올 봄까지도 다수확 정책만 고집해온 게 바로 농림부였다.

또 농림부는 이번에 추곡수매 동의제를 개정하겠다고 밝힌 이상 당연히 올 국회에 폐지안을 발의하는 게 옳다. 올해를 넘긴다면 농민 표를 의식한 정치권 입장에선 선거가 열리는 내년엔 결정이 더욱 어려워져 제대로 논의 한번 못해본 채 결국 시장개방 재협상 직전에야 호들갑을 떨 게 불보듯 뻔한 까닭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중장기 대책으로 쌀 생산 기반이 상실돼선 안된다는 점이다. 농민들에 대한 소득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급속한 쌀농사 포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과제는 생산 포기가 아닌 쌀 수급의 균형 유지인 만큼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나 통일에 대비한다는 측면에서도 적정 수준의 쌀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번 무너진 농작물 생산기반을 되돌리긴 어렵다. 콩.목화의 경우 미국과 중국에 시장을 내주자 국내 생산기반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쌀농사가 버리기 어려운 기본산업이라면 정책전환 과정에서 진통은 불가피하고 또 그 진통은 생산적이어야 한다. 그 점에서 이해당사자인 농민은 물론 정부와 국민이 깊은 이해와 지혜를 모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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