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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판깨기’ 나선 북한 … 천안함 사건 제발 저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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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근 냉랭해진 남북관계와는 별개로 속초항을 통한 남북 간 교역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22일 강원도 속초항에 입항한 북한 화물선. [속초=연합뉴스]

북한이 23일 우리 정부 자산인 이산가족면회소를 비롯한 금강산 내 남측 부동산 5곳을 몰수하겠다고 일방 통보함에 따라 남북 관계에 격랑이 일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북한 관련설’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온 북한의 강경 조치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삐걱거리던 남북 경협·교류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다. 북한이 8일 성명을 낼 때 “개성공업지구 사업도 전면 재검토될 것”이라고 밝힌 만큼 경우에 따라선 개성공단이 문을 닫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분석들이다. 개성공단에는 120개 우리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4만2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금강산 관광 판 깨기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현대아산 등 남측 사업자가 아닌 우리 정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날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명의의 담화에서 관광 문제만이 아니라 천안함 침몰 등과 관련한 남한 내 움직임을 걸고넘어진 것도 주목거리다. 성명은 “함선(천안함) 침몰사건을 우리와 억지로 연결시켰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은 김일성(1994년 7월 사망) 98회 생일 하루 전인 14일 벌어진 호화판 ‘축포야회’(불꽃놀이)를 이명박 대통령이 비난한 점을 문제 삼았다. 후계자로 내정된 셋째 아들 김정은이 주도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불꽃놀이를 비판하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체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고 북한은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을 ‘역도(逆徒)’로 비방하고 우리 정부를 ‘괴뢰 통일부’와 ‘괴뢰패당’으로 호칭했다. 당국자는 “북한 군부와 강경파 대남 전략가들이 그동안 ‘최고존엄’이라고 치켜세워온 김정일 일가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자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를 접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간 3000만(330억원) 달러의 현금을 입산료 명목으로 받아오던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에 이어 북한은 몰수 자산의 ‘소유권 등록’ 등 내부절차를 진행하고 다른 사업자와의 계약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3일 동결한 민간 소유 부동산도 몰수하는 수순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응당한 주권행사이고 북남 관계와 국제관례 규범에 부합하는 합법적 제재권”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최고인민회의(국회에 해당)가 만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금강산관광지구법’은 분쟁 발생 시 “협의로 해결하고 어려울 경우 북남 간 합의한 상사분쟁해결절차 또는 중재·재판으로 해결한다”(29조)고 규정하고 있다. 당국자는 “북한법에도 어긋나는 불법 몰수로 얻은 ‘장물’격인 시설과 사업권을 계약할 제3국 사업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 북한의 동결 조치가 시작되자 “일방적 조치에 단호히 대응하겠다”(20일 현인택 통일부 장관)고 했던 정부는 구체적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벼랑 끝을 향해 치닫는 북한의 강경 행보를 막을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 정부의 고민이다. 북한의 담화 직후 내놓은 성명이 대북 행동조치가 아니라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 강력 대응하겠다”는 선에 머문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정부의 이런 대응은 천안함 침몰 원인이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것과도 맞물려 있다는 풀이다.

이영종 기자


금강산 내 남측 시설은  정부·민간 합쳐 3593억 규모

북한이 23일 몰수·동결한 금강산 내 우리 정부와 민간기업 자산은 3593억원(통일부 추산) 규모다.

몰수 재산 중 우리 국민 세금인 남북협력기금 600억원이 들어간 이산가족면회소(12층 규모 200여 객실)와 18억원이 투입된 소방서는 정부 재산이란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당국자는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세워진 면회소를 빼앗겠다는 건 비이성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소방서 건물과 1억2000만원짜리 고가사다리차도 북한이 차지하게 됐다. 한국관광공사 소유인 온천장과 문화회관도 통일부가 900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관광공사에 대출해줘 현대아산 측으로부터 인수했다는 점에서 정부 소유나 마찬가지다.

23일 북한이 동결한 아난티골프장(18홀)은 에머슨퍼시픽그룹이 600억원을 들여 2008년 5월 완공했다. 두 달 뒤 북한 경비병에 의한 남한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문도 열지 못한 채 유지비만 들이다 결국 북한이 차지하게 됐다. 고급 숙박시설인 비치호텔과 고성항횟집도 묶였다. 남측 주사업자인 현대아산은 이번 조치로 2263억원의 부동산이 동결됐다. 북한은 몰수·동결과 함께 관리 인원 추방까지 밝혀 아예 남측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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