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대접 받는 화가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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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희옥(왼쪽)·김휘부씨 부부는 서로 “이 사람과 같이 하면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아 결혼했다”고 털어놨다. [오상민 기자]

미국에서 활동하는 화가 김휘부(66)씨는 요즘 미술계보다 영화 동네인 할리우드에서 더 유명하다. 영화 배경에 그의 작품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 세트용으로 그림을 빌려주는 전문회사에서 인기가 좋다는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에누리 안 하고 제값 정확히 챙기는 고집 덕”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에 노출돼서 그림 가격이 오르거나 유명해지는 건 관심이 없어요. 내 작품이 필요한 건 그 사람들이니 말이죠. 그랬더니 더 많이 찾던데요.”

김씨가 24일까지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서울 경운동 장은선 갤러리(02-730-3533)는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동창을 보러오는 화가들로 붐볐다. 부인 김희옥(64)씨 개인전도 28일부터 5월 8일까지 이어지니 화랑은 1960년대 학번들 모임 장소로 변했다. 미국에 가면서 남편 성을 따르게 됐지만 원래 엄희옥씨인 아내와 김휘부씨는 홍익대 미대에서 선후배로 만난 부부화가. 월간중앙 창간 42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두 사람은 그림 그리는 일로 먹고 사는 일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한국에선 커머셜 갤러리(상업화랑)라 하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태도야말로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난 지금 한국 미술계가 훨씬 물질주의에 빠져있다고 봅니다. 자기 그림에 대한 열정, 작업을 밀고 나가는 진실함을 따져보면 그렇죠. 돈에 집착하면 이미 작가가 아니죠.”

부부는 캔버스에 구멍이 날 지경으로 후벼 파는 끈질김이 한국 화가들에게 부족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전업 작가보다 교수가 돼서 생활의 안정과 사회적 권위를 얻으려는 태도가 그 증거라고 쓴 소리를 했다. 미국에 간 지 36년, 그림만 그려 먹고 살기까지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으로 노동판에서 뛴 과거가 있지만 그 생활이 밴 작품세계로 각기 개성을 평가받는 작가가 됐다. 남편 김휘부씨는 건축적 요소와 풍화된 듯한 질감으로 아시아적 감성을 인정받는 ‘회화 건축가’로 불린다. 부인 김희옥씨는 부부가 사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사회의 다양한 민속예술 전통을 바탕으로 한 ‘인물 드로잉’으로 이름이 났다.

“내년 9월 로스앤젤레스 아트코어(Artcore)에서 아들과 우리 부부 3인전을 엽니다. 사진작가인 아들이 함께하는 전시회인데, 처음에 부부전은 절대 안 한다고 했다가 아들이 끼는 바람에 양보했어요. 딸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니 가족 모두가 미술을 업 삼아 한 길을 가고 있는 셈이죠.”

부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자택에서 종일 수도승처럼 그림에 묻혀 산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작가 작업실로 헤어졌다가 밥 먹을 때만 만난다는 두 사람은 “그림 그리는 일로 늙어 죽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결연한 뜻을 밝혔다.

글=정재숙 선임기자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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