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떤 경우든 북핵 용인은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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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의 북핵 발언을 둘러싸고 왜 이 시점에서,그것도 미국에 가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런 주장을 폈는지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시점이나 장소 등을 감안할 때 뭔가 계획된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한다.'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라는 부분을 '일리가 있다'고 즉석에서 고친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다른 쪽에서는 그 발언이 기존의 우리 입장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발언 내용이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6자회담은 성공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직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또 향후 북핵 문제 등에서 어떤 파장이 생길지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문제는 '핵은 외부위협에 대한 억제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은 일리가 있다'는 발언이다. 대통령이 북한 핵의 보유를 용인하는 발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 논리라면 다른 국가들도 핵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자체를 무너뜨리는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경우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느냐는 문제다. 그 점에서 대통령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다. 대통령이 북한 핵을 이해한다면 그 경우 한국 안보는 어떻게 보장하겠는지를 당연히 설명해야 한다. 이러니 국민들 사이에 의구심과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다.

외교나 안보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는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의 철저한 공조가 우선이라고 믿는다. 싫든 좋든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로서는 미국이 우리의 안보를 담보해 줄 수 있는 나라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들이 한.미공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현실적으로 고려했는가를 묻고 싶다. 혹시 이런 민감한 사안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천명한 것은 외교의 미숙성이 아닌지 걱정된다. 앞으로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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