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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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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해 11월 백승우·김인숙 사진작가는 단비 같은 소식을 접했다. 한진그룹이 ‘올해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 선정해 각각 5500만원 상당의 후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상금에 더해 개인전과 사진집 출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한진그룹이 아무 조건 없이 이들의 후원자로 나선 것은 ‘메세나’ 활동의 일환이다.

메세나(mecenat)는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마에케나스(Maecenas)에서 유래했다. 그는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후원했다. 사후에도 유산 모두를 문화·예술 지원을 위해 내놨다. 메세나라는 말이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후원을 상징하게 된 연유다.

보상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후원자를 뜻하는 말은 패트런(patron)과 스폰서(sponsor)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피렌체의 영주로서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메디치가가 대표적 패트런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같은 명작들이 메디치가의 후원에 힘입어 탄생했다. 패트런이 명확한 반대급부를 내건 것은 아니지만 ‘주문 제작’ 같은 이득을 기대하고 지원했던 건 분명하다. 메디치가 사람들을 암살하려던 파치 가문의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장면을 보티첼리가 벽화로 제작한 것도 그래서였을 터다.

스폰서라는 말은 미국에서 상업방송이 시작됐을 때 ‘광고주’라는 뜻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스폰서의 어원이 라틴어의 ‘보증인·후원자’인 때문이다. 상업방송국은 광고주가 경영을 보증해주는 사람이자 후원자라는 거다. 지금은 올림픽·월드컵 같은 스포츠 행사에 후원금을 내거나 운동선수와 계약을 하고 지원하는 기업이 ‘스폰서’로 불리는 대표적 예다. 이는 비용을 지불하고 홍보 효과를 거두려는 정당한 거래다. 문제는 불순하고 음습(陰濕)한 뒷거래의 혐의가 짙은 스폰서 탓에 스폰서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거다.

관행이 된 검사의 스폰서 문화가 주범 중 하나다. 급기야 이번에 부산에서 검사 수십 명이 스폰서에게서 정기적으로 돈과 향응, 성 접대까지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스폰서로 삼은 업자의 돈을 ‘사(私)금고’처럼 여긴 그 후안무치(厚顔無恥)에 기가 막힐 뿐이다. 이러니 스폰서란 말이 ‘타락’의 대명사로 전락할 신세다. 검찰은 차제에 정신 바짝 차리고 썩은 냄새 진동하는 내부의 스폰서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 안 그러면 ‘검찰’이란 말도 ‘스폰서’ 꼴 날 테니까.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