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장관 사퇴' 2여 마찰] 못박은 J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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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한광옥(韓光玉)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임동원 통일부 장관 물러나란 얘기했나.

"(고개를 끄덕이며)자진사퇴하는 게 문제해결에 가장 바람직스럽다는 얘기여. "

- 정기국회 폐회 뒤 연말개각 때 林장관을 교체하면 안되겠나.

"(언성을 높이며 강한 부정의 취지로)시끄러. 누가 그런 얘기를 해. "

29일 한국산업인력공단 행사에 참석한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는 오랜만에 기자들에게 자기 입장을 명쾌하게 표현했다.

그동안 林장관 처리문제를 놓고 JP를 만나고 온 사람들의 얘기는 서로 달랐고, 이에 따라 JP의 진의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28일 귀국 기자간담회 때도 "중용의 길이 있다" 고 한 JP의 말을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일부는 그의 '2여공조 유지론' 과 연결해 '탐탁진 않지만 林장관을 살려줘야 한다' 는 뜻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날 JP는 중용론에 대해서 이런 일반의 해석을 뒤집었다.

"林장관이 스스로 물러나야지. 국회표결까지 가는 것은 모가 나는 것이라 그래서 어제 중용지도(中庸之道) 얘기를 했는데, 그걸 못 알아듣고 딴소리들을 썼더라" 고 설명했다.

즉, 林장관 문제는 국회처리라는 큰 소리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물러나는 조용한 방법으로 정리돼야 한다는 게 참뜻이라는 말이다.

JP는 이날 저녁 장재식(張在植)산업자원부 장관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6.25때 육사8기 동기생 1천6백명 중 4백30여명이 전사했다" 며 "방북한 사람들이 김일성 밀랍인형 앞에서 눈물 흘린 얘기를 죽은 이들이 듣는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무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대통령의 짐을 덜어드리는 것" 이라고 말했다고 변웅전 대변인이 전했다. 이양희(李良熙)사무총장은 "韓실장이 JP에게 '연말개각 때 林장관을 교체하면 되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고 韓실장은 JP의 말을 듣고만 갔을 뿐" 이라고 전했다.

JP가 이처럼 강력한 입장을 밝힌 데 대해 그의 측근은 "보수.안정 희구세력이 지지층인 JP로선 林장관 문제를 포기하면 대망론이 모두 거짓말인 것으로 비춰지게 된다" 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완구 총무는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고 말했다. 30일 있을 자민련 소속의원 연찬회에서도 JP와 당의 입장이 번복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당내에서 지배적이다.

그러나 당 주변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DJP회동을 성사시켜 당정개편과 관련한 다른 카드를 제시하며 설득에 들어갈 경우에도 JP가 버틸지에 대한 의구심이 아직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영기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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