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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마당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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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 아득하고 희미한 기다림, 올봄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나는 팔순이 다된 광대와 공연을 약속했다. “봄이 왔는데, 꽃이 희미해.” 황사 때문이 아니라, 선생의 시신경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수술도 안 되고 얼마 후엔 시력을 완전히 잃는다 한다. “하루라도 더 성할 때 해야 할 텐데.” 선생도 나도 애가 탄다.

손태열(孫太烈·1932년생) 선생. 토란 잎에 소낙비 떨어지듯 후드득거리는 장구 소리에 반해 떠도는 ‘딸딸이’ 단체를 따라 나섰다. 소품이나 장치를 손수레에 싣고 가다 자갈밭이라도 만날라치면 딸딸 소리 내니 ‘딸딸이’ 단체였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단장의 이름이 단체명인 휘청거리는 패거리, 흥행이 안 되면 ‘똘똘이’를 달고 다녀야 했다. 여관비나 밥값을 못 내면 여관 주인이 식구 중 하나를 딸려 보냈는데, 외상값 받으러 따라붙은 녀석을 ‘똘똘이’라 했다. 몇 군데서 실패하면 곳곳에서 따라붙은 똘똘이들이 선후배 다툼을 했다.

선생은 이런 풍찬노숙(風餐露宿)이 시력을 잃는 이유라 생각한다. 시력을 잃어감에도 굳이 출연을 간청한 까닭도 ‘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을 잔’ 이력 때문이다.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놀보전’ 중에서 마당쇠를 맡고 있었다. 어찌 그런 요령이 생겼을까. 별 볼일 없는 대본인데, 깜박 죽게 연기했다. 관객이 죽어야 광대가 밥을 버는 것이었다. 떠돌며 군더더기를 털어버린 그 연기에서 강한 근육질이 느껴졌다.

들뜬 나는 몇 차례 서울 공연을 벌였고, 한 달 전 다시 공연을 약속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물러난다는 선생이 부탁을 했다. 객석의 불을 더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선생은 관객의 얼굴을 보며 연기한다. 반응을 포착해 대사를 넣고 빼니, 대본의 반이 관객의 표정이다. 그런데 눈이 더 어두워진 것이다. 더 밝히면 무대와 객석의 구별이 없으니 걱정이다.

안달하며 기다리는 내내, 선생이 표현한 ‘물러난다’는 말이 귓전을 떠돈다. 광대가 벼슬인 양 물러난다는 것이다. 보릿고개란 말이 시퍼렇던 시절 고봉밥을 찾아 황톳길을 떠돌았으니, 말하자면 생계형 광대였다. 그럼에도 박수소리 들리는 자리를 벼슬보다 나은 자리로 여겨 온 거다. 무명의 은퇴, 제목이야 따로 있지만 마음속의 제목을 정했다. ‘안녕! 마당쇠’. 마당쇠는 많았어도 그런 마당쇠는 없었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객석의 불을 더 밝힐 것이다. 하여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이 피워 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꽃을 보게 할 것이다. 무대 또한 더 밝힐 것이다. 하여 밥을 향한 절실한 걸음이 이룬 연기, 살짝 상말이 들어갔지만 탁발처럼 성스러운 연기를 선명하게 선보일 것이다.

진옥섭 KOUS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