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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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1988년 6월 1일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 선수촌·기자촌 준공식에 참석한 뒤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직함 기준) 김운용 IOC위원, 사마란치 IOC 위원장, 이명박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김종하 대한체육회장. [중앙포토]

“쎄울, 꼬레아~”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이 서울을 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장면은 지금도 한국인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런 사마란치가 21일 올림픽 무대에서 영원히 은퇴했다. 사마란치는 현대 스포츠의 거인이었다. 올림픽에 기업 후원과 방송 중계권 제도를 도입해 국제 스포츠를 획기적으로 개혁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2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부자집에서 태어난 사마란치는 이에세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가업을 이어받아 섬유업체를 경영했다. 스포츠에 관심이 컸던 그는 스페인올림픽위원회에서 여러 요직을 거친 뒤 67년 스페인 체육장관으로 임명됐다.

사마란치는 80년 IOC 제7대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77~80년 소련대사를 지냈는데 이때 소련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IOC 위원장 선출에 큰 힘이 됐다. 80년 모스크바 총회에서 사마란치가 IOC 위원장으로 뽑혔을 당시 IOC는 파산 직전이었다. 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참가를 거부하면서 반 토막 난 채 치러졌다.

사마란치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을 흑자 올림픽으로 이끌며 역량을 발휘했다. 동구권 국가들이 참가를 거부해 이 대회 역시 반쪽 올림픽이었으나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턱을 낮춰 흥행에 성공했다. 이 덕에 각국은 올림픽 유치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게 됐다.

그는 88년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될 때도 사마란치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아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도 IOC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공식 성명에서 “사마란치는 현대 올림픽 게임을 일으켜 세운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정재홍·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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