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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예술발전 가로막는 '엄숙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일전에 만난, 모 대학 무용과에 다니는 한 여학생의 고민 한토막이다. 그녀는 공연계 현장에서 일하다 무용을 하고 싶어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만학도였다. 그만큼 예술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내친 김에 창작의욕을 실험할 겸 '독립예술제' 에 참가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교수님에게 그걸 얘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우리 교수님은 그런 데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앞으로 대학원에도 진학할 건데 밉보이면 어떡해요. "

결국 올 독립예술제 참가 명단에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독립예술제는 1998년부터 시작한 젊은이들의 자발성 축제. 연극.무용.마임.음악.퍼포먼스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1백여개 단체가 독립제작 방식으로 참여한다. 한마디로 잠재력 있고 끼가 넘치는 예비 아티스트들의 '주변부 예술' 무대다.

모델은 매년 이맘 때 열리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세계 유수의 단체나 예술가들의 초청공연인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달리, 매년 세계 50여개국에서 온 1천4백여개의 공연물이 중구난방으로 선보이는 '잡탕예술' 의 전시장이다.

공연장은 무려 2백여 곳. 제대로 된 극장도 있지만,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에든버러 대학의 강당이나 교회를 임대해 급조해서 만든, 최소한의 무대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임시 공연장이 대부분이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곳에 참가하기 위해 끼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신열을 앓고 있다.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최근 그 곳을 다녀온 기자는 그 축제의 역동성을 부러움 반 질시 반으로 반추하면서, 앞에서 말한 여학생을 떠올렸다.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깔아놓은 '멍석' 이 있는데도, 제 뜻에 따라 당당하게 참가하기 두려운 그 여학생의 모습은 곧 우리 도제(徒弟)식 예술교육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보면서, 우리식 제도권 교육이 가르치는 예술의 엄숙주의를 깨지 않고서는 재기발랄하며 참신한 예술의 탄생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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