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방북단 보도 좀더 신중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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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평양 민족통일 대축전에서 남측 대표단의 행동을 놓고 우리 사회가 또다시 이념갈등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급기야 일부 인사들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22일 1면과 31면에 실린 사진은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사회적 관심사인 만큼 중앙일보는 지면을 과감히 할애해 대축전 참가 승인 과정(23일 5면, 24일 1.3면)과 북에서의 방북단 동정(20일 1면, 23일 1면), 그리고 이를 둘러싼 쟁점(24일 3면)과 사회 반응(23일 7면)을 다뤘다.

특히 사건의 배경과 문제점들을 정리한 '불거지는 남남갈등'은 순발력 있고 시의적절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을 접하면서 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신문이 좀더 성숙하고 신중한 보도 태도를 갖추도록 요구하고 싶다.

첫째, 기사의 관심이 방북단의 돌출행동과 정부의 허가과정에 집중되다 보니 대축전 행사의 공과에 대해 균형잡힌 조명을 하지 못한 감이 있다. 유례 없는 대규모 민간교류단 방북은 남북 민간교류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며, 적지 않은 사회비용을 지불한 행사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의 돌출행동에 파묻혀서인지 방북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기사는 접하지 못했다.

이번 방북단 활동이 남북교류에서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는지, 그렇다면 정부가 애당초 비용을 보조하면서까지 이 행사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는지, 나아가 향후 이런 행사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21일 4면의 평양축전 결산 기사는 이러한 질문에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방북단 활동의 성과 및 남북 민간교류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와 대안들이 차분하게 짚어지지 못해 아쉬웠다.

둘째, '남남갈등' 으로 표현되는 최근의 이념대립을 신문조차도 이성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전쟁을 경험하고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통일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많은 갈등들 중에서도 가장 뿌리깊고 민감한 부분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런 갈등이 대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표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번 사건 역시 그러한 변화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이 우리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우려스럽거나 금기시해야 할 사항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다룬 기사들에선 갈등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이념적 공세만을 부각함으로써 기사의 상품성을 높이려는 선정적인 저의마저 느껴진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간격 속에서 통합의 가능성과 대안들을 모색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앙일보의 기획특집과 문화면을 읽다 보면 학술지 못지 않은 고급 정보와 시대를 앞서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기획시리즈 '세계 지식인지도' (23일 14면)나 '미래가 보이는 마당' (24일 8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진보적 지성의 역할에 대한 논쟁을 소개한 기사(21일 12면)나 지식사회의 성찰을 다룬 기사(23일 17면) 역시 독자들에게 지식사회의 고민들을 엿볼 기회와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유명 방송인의 결혼과 같은 개인사(24일 30면)를 사회면에서 적지 않은 크기로 다룬 것은, 구독률 경쟁이 치열한 대중지로서의 불가피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신문의 무게를 떨어뜨린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참신하고 발랄한 신문, 진지하고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신문이라는 목표들은 달성하기에 쉽지 않고 서로 상충되는 것들이지만 이러한 신문을 우리도 이제 하나쯤은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지. 이에 가장 근접한 신문으로서 중앙일보가 독자의 마음에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선희 이화여대 교수 · 예방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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