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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신문의 하향 평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굴의 정신으로 싸워서 얻는 것이라는 사실은 언론자유의 역사에서도 유감없이 증명된다.

언론 선진국들인 영국과 미국이 오늘의 언론자유를 누리게 된 것도 정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비판적인 신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신문들이 거기 저항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반복의 결과다. 세금은 언제나 정부에 의한 신문탄압의 최상의 무기였다.

세금을 통한 언론통제의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영국 앤 여왕의 지시로 1712년 의회가 수입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모든 신문에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왕실에 대한 신문들의 비판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망국의 세금' 이 되었다. 신문에 대한 세금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신문에 대한 인지조례(印紙條例)로 적용돼 미국 독립운동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 세금으로 언론 길들이기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언론정책은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된 세무조사를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의 세금을 매겨 비판적인 신문들에 경영압박과 함께 사주.대주주.발행인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는 것처럼 보인다.

김대중 정부의 언론정책의 특징은 조중동 3대지의 발행부수 및 광고수입과 영향력의 몫을 줄여 정부에 협조적이라고 생각되는 나머지 신문들의 부수.수입.목소리의 몫을 키워주자는 것임이 분명하다.

金대통령은 지난 4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신문 하향평준화의 신념을 솔직하게 밝혔다. "언론도 광고나 독자를 얻는 데 있어서 공정한 태도를 갖고 모든 언론들이 같은 기회를 가져야 하며 소수언론이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공정한 광고나 독자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 (뉴스위크 한국판 4월 25일자). 金대통령은 정부가 이런 일에 개입하겠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말한 직후에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시작됐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할 만큼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나라에서 큰 신문들의 몫을 덜어서 작은 신문들의 몫을 키워주자는 대통령의 발언을 흘려들을 국세청장이 있고 공정거래위원장이 있고 검찰수뇌가 있을까.

미국에서도 세금을 무기로 한 신문의 하향평준화 시도가 있었지만 물론 실패했다. 1980년대에 미네소타 주정부는 신문이 사용하는 용지와 잉크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1년에 10만달러 미만의 용지와 잉크를 소비하는 신문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했다.

최종상품이 아닌 원자재에 세금을 매긴 것도 기이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차별과세가 주정부 하는 일에 비판적인 큰 신문 견제와 작은 신문 기(氣)살리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세금의 3분의2를 부담하게 된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은 법정투쟁을 해 연방대법원에서 그런 차별과세는 특정신문을 탄압하기 위한 것으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여기서 특정 언론사나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세금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확고한 판례로 정착됐다.

17세기 말 영국이 신문에 대한 사전검열을 폐지했을 때 언론은 권력의 통제를 아주 벗어난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 세기에 세금을 통한 언론통제가 등장했다. 영국의 언론자유의 전통을 계승한 미국에서는 20세기 말에도 정부가 세금을 무기로 비판적인 언론을 길들이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 對권력 긴장관계는 숙명

동전의 양면인 언론자유의 역사와 언론탄압의 역사를 보면 권력이 존재하는 한 정부에 의한 언론 길들이기에 마침표가 없다는 것을 알만하다.

권력과 긴장관계를 갖는 것은 언론의 숙명이요 존재의 조건이다. 지금 조중동 3대 신문이 당하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은 앞으로도 간헐적.단속적으로 계속될 정부에 의한 비판언론 재갈 물리기의 한 단계에 불과할 것이다.

권력쪽에서 모르는 게 있다. 사주가 신문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5공식으로 하지 않는 한 사주의 이름이 바뀌어도 신문은 바뀌지 않는다.

사주의 구속으로 기자가 침묵하지 않는다. 정부는 정치적인 동기에서 세무조사를 했다는 비판을 감수하는 대신 이번 사태가 결과적으로 언론사의 투명경영에 기여한다는 부수효과에만 만족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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