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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한동안 뜸했던 TV 단막극, 부활이 반가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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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작진은 작품 시사 한달 전에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언론의 지원을 호소했다. “편성 잡는 것도 힘들었고, 결과에 따라 언제까지 갈지 기대하기 어려워서”(문보현 CP)라는 것이다. ‘신인 발굴’이라는 본래 목적에도 불구하고, 노희경씨에 이어 박연선씨 등 이른바 스타 작가들을 초반부에 배치하는 것도 ‘결과’를 의식한 전략이다.

문 CP의 말이 엄살이 아닌 것이 2008년 KBS ‘드라마시티’가 폐지될 때 그러했듯, 방송사 단막극은 경기에 따라 존폐가 결정된 ‘계륵’ 같은 존재였다. ‘TV문학관’ ‘베스트극장’ 등이 영상미와 실험성을 갖춘 작품들을 쏟아내던 시절을 지나 단막극 자체가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면서다. ‘단팥빵’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 주간극도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폐지됐다. 결과적으로 한국 드라마엔 주2회 이상이 기본인 미니시리즈와 주말극, 일일극만 남았다.

사실 상업 논리만 생각하면 방송사에 단막극을 요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류’ 현상에서 보이듯, 드라마는 한 나라 대중문화의 요체이자 대표상품이기도 하다. 단막극이라는, “완결된 대본으로 전체 호흡을 보고 연출 실험도 할 수 있는 기회”(‘빨강 사탕’ 홍석구 PD)가 없다는 것은 신인에게 불행한 일이다. ‘쪽대본’을 허겁지겁 찍으며 주 2회 ‘납품’에 맞춰야 하는 제작환경에서 미래 지향적인 작가나 PD, 연기자가 나오겠는가. “단막극은 미래 인력 양성 측면에서 투자해야 한다”(MBC 정운현 드라마국장)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KBS 이응진 드라마국장은 이를 ‘스프링벅의 비극’에 비유했다. 스프링벅은 한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풀을 먹으려던 원래의 목적은 잊고 무작정 함께 달리다가 모두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는 아프리카의 양이다. 시청률을 유일잣대로 맹신하는 한 우리 문화가 그렇게 ‘막장’으로 치달을 것이란 경고다. 모쪼록 KBS가 초심을 잃지 않고 문화 다양성 키우기에 앞서주길 기대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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