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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에 숨은 뜻밖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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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감각의 역사
마크 스미스 지음
김상훈 옮김
성균관대 출판부
300쪽, 1만8000원

189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인들과 중국 이민자들 사이에 ‘악취 갈등’이 빚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오징어였다. 중국 어부들이 오징어를 잡아 펼쳐놓고 말리는데 백인 거주자들이 불결하고 썩은 고기 냄새에 진저리를 치며 소송까지 냈었다고 한다. 당시 백인들은 이 냄새와 연계해 중국인이 “열등하고 불결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 책을 쓴 마크 스미스 교수(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대)는 “주관적 성격이 강한 후각은 민족성·민족주의로 확대돼 ‘타자’를 규정짓는 데 쓰이고, 외부인들을 모욕하는 데도 한 몫 해왔다”고 말한다.

오래 전부터 냄새는 계급과 인종 등을 분류하는 역할을 했다. 18세기 유럽의 귀족들은 빈민들이 악취와 향기 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고 여겼다. 사진은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향수’의 한 장면. 생선시장에서 태어났으나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주인공 이야기를 그렸다. [중앙포토]

오감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의 역사를 훑으며 각 감각들이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비록 광범위하게 접근하고 있지만 ‘오감’을 계급 정체성과 산업화, 타자에 대한 개념을 연결시킨 다양한 해석들이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지은이는 오랫동안 서양문화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해온 감각은 단연 시각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인쇄혁명과 계몽주의 등이 시각에 권력을 부여한 요소로 손꼽힌다. 16~17세기 유럽 궁중에서 시작된 발레를 ‘초시각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단다. 발소리와 숨소리를 최소화하고 절제된 몸짓으로 ‘눈’에 복종한 볼거리였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시선과 소리는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게 여겨졌고, 남미의 마야문명이나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시각·청각·후각을 아우르는 공감각을 중요하게 여겼다.

후각의 역사도 흥미롭다. 고대에 향기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현대에는 각 개인이 향수를 쓰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집단 모임이나 스포츠 행사를 참관할 때 다같이 향수를 썼다고 한다. 냄새, 향기, 후감이 고대에 힘을 가졌던 이유는 종교와도 관계가 깊다. 히브리 성서에는 ‘향은 지식, 진리와 관계가 있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단다. 계급차별도 후각과 관계가 깊었는데, 특히 영국의 지배층은 코를 통한 계급 구별에 탁월했다. 향기가 좋은 곳, 즉 코가 즐거운 장소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감각의 역사 연구에서 촉감이 가장 외면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촉각이 음란하고 감정적이며 덜 지적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져 있었던 탓”이란다.

저자는 “감각의 역사 연구 자체가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했다. 과거 사람들이 감각의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어떻게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밝혀내려면 수많은 분야에서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제가 광범위한 것은 책의 장점일 수도, 한계일 수도 있다. 특히 서구 중심의 시각은 한계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 ‘죽어 있던’ 소리와 냄새, 질감과 시선을 일깨우고 새 탐구 분야를 흥미롭게 소개했다는 점에서는 반갑게 들춰볼 만한 책이다. 원제 『Sensory History』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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