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with] 코믹 드라마 출연 주부 최혜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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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최혜정(37)씨. 그녀는 대학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모 방송국에서 성우 교육도 받은 주부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지만 한때 방송인을 꿈꾸었던 그녀가 week&과 함께 '방송 출연'에 도전했다. 오랫동안 가슴 한구석에 꾹꾹 숨겨놓았던 끼를 얼마나 발산할 수 있을지 그 현장을 가보자.

# 대타면 어떠랴

따르릉-. "여보세요."

"예, 중앙일보 week&입니다."

중앙일보? 웬일이람. 오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연락이 없으면 탈락하신 겁니다"라고 냉랭하게 대답해 놓곤.

"저, 원래 하려던 분이 갑자기 개인 사정으로 펑크를 내서 최혜정씨에게 기회를 드릴까 하는데…."

기회 좋아하네. 대타란 말이지.

"당장 내일인데, 시간 괜찮으세요."

한번 퉁겨볼까, 아니야 어떻게 굴러 들어온 떡인데. "애가 다 커서 제가 평일엔 한가한 편이에요."

아침 일찍 방송국으로 오라, 의상은 두 벌을 준비하고 화장은 직접 해야 한다는 등의 주문이 이어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소녀처럼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래도 '한가하다'란 말은 너무 속이 보였지.

# 어, 생각보다 쉬운데

쌀쌀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SBS 목동 사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30분. 내가 출연할 프로그램은 아이엠(금 저녁 8시55분 방영)의 코믹 드라마 부분이다. 13층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촬영장은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스태프와 출연진, 매니저 등 50여명이 한데 섞여 와글와글. 저 구석 소파에서 옥주현이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다음주에 나올 새 앨범 작업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웠다나. 스타도 쉬운 게 아니구나.

"오셨어요. 바로 '슛' 들어갑니다. 준비하세요. "

곱살하게 생긴 작가가 대본을 툭 던지더니 바로 촬영을 하잔다. 아니 숨도 못 돌렸는데…. 서둘러 대본을 훑어보았다. 대사는 딱 한 줄. 그래도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레디- 액션!"

"자-, 여러분을 도와줄 상무님을 소개합니다."

"오케이. 연기 해보셨어요. 잘 하시는데요."

정형환 감독의 칭찬에 우쭐해진다. 나도 한때 무대에 섰던 몸이라고.

# NG, 또 NG … 울고 싶어라

30분쯤 지나 다시 하잔다. 콩 볶듯 일사천리. 촬영은 시간과 전쟁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다섯 곳을 옮겨 다니며 찍어야 한다나.

이번엔 대사가 제법 길었다. 정감독이 "몸을 뒤로 젖혔다가 자연스럽게 들어오세요"하며 연기 지도도 해준다. 드디어 카메라에 불이 들어온다.

"컷! 카메라 보지 마시고요."

주변에서 픽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얼굴이 붉어진다.

"치열한 경쟁력을 뚫고…."

"컷! 경쟁력이 아니라 경쟁률입니다. 대본 마음대로 고치지 마세요." 감독의 짜증 섞인 목소리다.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오금이 저려온다. 가까스로 별 실수 없이 연기했다고 생각한 순간 감독의 일침. "다시 가죠. 시선 처리가 불안해요. 한 곳만 뚫어져라 바라보면 안 되거든요."

대사가 왜 이렇게 길까. 조명과 마이크를 들고 있는 많은 스태프가 나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네 번째 시도. 그런데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안 떨어진다. "시간 없으니까 일단 그냥 갑시다. 다음." 정말 울고 싶다.

# 그냥 집에서 TV나 볼 걸

오후 1시쯤 일산으로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 도시락이 제공됐다. 이렇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굳이 식사를 해야 하나. 그런데 민의식 PD는 "야외 촬영하면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이렇게라도 끼니를 해결해 다행이다. 보조 출연자들은 아예 도시락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낯설고 지루한 촬영장에서 신동엽씨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고개를 꾸벅 숙여 "안녕하세요"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아, 예-" 그는 얼떨떨한 표정이다. 그렇지, 나야 만날 TV에서 그를 보지만 그는 나를 전혀 모를 텐데. 주책을 부렸나.

나이트 클럽 장면에서 내 역할은 엑스트라다. 어쩐지 어색해 대충 몸을 흔들었더니 감독이 한마디한다. "카메라에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래, 내 막춤 실력을 한번 발휘해 봐.

내 촬영은 오후 4시쯤 끝났다. 제작진은 밤 12시까지 계속 한단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다 좀 찜찜해서 민PD를 찾았다. "아이가 볼까 조금 민망해서 그러는데 아까 춤추는 장면은 편집될 수 있을까요?" "걱정 마세요. 방송은 18분가량 나가는데 저희가 보통 25분 정도 찍거든요. 아까 오전에 하셨던 부분도 잘릴지 모릅니다. " 읔-. 10시간 넘게 고생한 게 말짱 도루묵이 될지도 모른다고. 아이고, 그냥 TV나 편하게 볼 걸, 이게 무슨 생고생이람.

정리=최민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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