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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백룡동굴’ 평창군 마하리의 미스터리, 마침내 문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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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년에 걸쳐 생성된 백룡동굴의 대형 종유석.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처럼 웅장한 모습이다.

백룡동굴. 강원도 평창군 마하리에 있는 작은 동굴이다. ‘백룡’이라는 이름은 동굴 주소와 최초 발견자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었다. 동굴이 있는 백운산의 백(白)자와 정무룡의 룡(龍)자다.

마하리 소년 정무룡이 1976년 이 동굴을 처음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굴을 뚫고 들어갔다. 굴 입구에서 200m 안쪽까지는 이미 수 백 년 전부터 사람이 드나들던 곳. 그러나 뻔질나게 동굴을 들락거리던 소년의 눈을 자극한 건 따로 있었다. 동굴 안쪽 바닥에 난 작은 구멍이었다. 막장으로 알려진 곳 바닥에 주먹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숱한 동굴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소년은 그 구멍을 보고 여기가 끝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바람이 구멍을 통해 동굴 이쪽과 저쪽을 왕래하고 있었다.

소년은 이내 동굴 탐험 작전을 짰다. 먼저 일손이 필요했다. 이웃에 사는 사촌 동생들을 불러모았다. 정과 망치도 챙겼다. 마침 건전지를 쓰는 손전등이 강원도 산골에도 막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소년은 신제품을 손에 넣고서 “드디어 때가 왔다”고 쾌재를 불렀다.

소년 탐사대는 꼬박 사흘간 작업에 매달렸다.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것처럼 소년 5명이 교대를 하며 구멍을 팠다. 마침내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소년은 기어서 구멍을 통과했다.

거기엔 별세계가 있었다. 다른 동굴 놀이터에서는 구경하지 못했던 크기와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이 소년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훗날 천연기념물 260호로 지정된 백룡동굴의 존재가 맨 처음 세상에 드러난 순간. 엄청난 발견 앞에서 소년 탐험가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긴 세월이 흘러 1996년. 백룡동굴이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정부가 동강댐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환경단체와 일부 주민이 “백룡동굴을 지키자”며 반대 운동을 벌였다. 댐이 들어서면 동강 수면과 비슷한 고도의 백룡동굴은 수장될 판이었다. 반대에 부닥힌 정부는 동강댐 건설 계획을 접었다.

그리고 2010년. 백룡동굴이 드디어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연구 목적 말고는 사람의 진입이 일절 통제됐던 백룡동굴이 6월 이후 일반 관람객을 맞는다. 함부로 열어젖히는 건 아니다. 안전모부터 장화까지 동굴 탐험 복장을 완전히 갖춰야 하며, 헤드랜턴도 착용해야 한다. 입장 정원도 하루 150명 내외로 제한된다.

34년 전 동굴을 발견한 소년은 이제 50대 농부가 됐다. 동굴 맞은편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 동굴 개방 소식을 전해들은 정무룡씨는 “어렸을 적 동굴을 드나들며 탐험가 흉내를 냈던 시절이 생각난다”며 소년처럼 웃었다.

개방을 앞둔 백룡동굴을 week&이 먼저 갔다 왔다. 백룡동굴 탐사는, 파란만장했던 동굴의 역사마냥 흥미진진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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