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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칼럼] 개혁 독해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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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왜 이 정권은 끊임없는 개혁을 시도하는가. 특히 여러 개혁 중에서도 어째서 언론개혁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누구나 품을 수 있는 당연한 의문이다.

그 해답은 사람마다, 집단마다, 정파마다 다를 수 있다. 여기서는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사견임을 전제로 그 의문을 이렇게 풀어보기로 한다.

우선 몇가지 사실확인이 필요하다. 현정권은 소수정당이다. 현정권의 지지세력은 중도좌파적 성향이다. 정권교체기에서 몇몇 보수언론은 현정권 창출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 임기 후반이 되면서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이 네가지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할 현실적 팩트에 가깝다. 개혁적 소수정당이 천신만고 끝에 집권했으면 개혁 위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물과 기름 같은 정권과 언론간에 어떤 조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도박에 가까우리만큼 위험도가 높은 빅3 언론사와 대결구도로 몰아갈 때 정권의 위험부담은 너무 크다.

또 민주화와 인권, 언론자유를 그토록 주창해온 DJ 이미지에 결코 맞지 않는 개혁프로그램이다. 정권은 유한하고 언론은 무한하다는 현실적 수명 격차가 있다. 그런데도 이를 강행해? 겁만 주고 말겠지 하는 게 일반의 상식적 판단일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정권 실세급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말 그렇겠다고 동의할 만한 내용 중 이런 대목이 있었다. "우리(집권 주도세력) 또한 집권을 한 이상 이 사회를 이끄는 주류세력과 잘 지내고 싶었고 그 주류에 편입하기 위한 숱한 노력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패였다. " 이 사회 주류가 무엇인가. 전국 중에서도 서울, 서울 중에서도 강남 몇몇 지역, 명문고-일류대를 나온 엘리트 계층, 역대 정권의 수혜자인 상당수 TK세력,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빅3 신문을 볼 것이다. 이 주류세력은 새 세력이 끼어드는 것을 거부했거나 편입 자체를 부정했을지 모른다.

이 말엔 슬픈 설득력이 있다. 집권당이 주류세력화하지 못할 때 오는 비애와 좌절감이 어떠했겠는가. 또 그 다음 단계에선 집권당 스스로가 주류화하겠다는 역반응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이해 속에서 보면 개혁의 당위성, 개혁의 불가피성이 메인 스트림에 대한 반감 또는 개혁을 통한 사회발전, 개혁의 정당성 확보를 통한 소수 세력의 다수화 전략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나가나 하는 의문은 그대로 남는다.

정치란 현실이다. 현실적 이해득실 없이 언론과의 무모한 전쟁을 벌일 만큼 이 정권이 그렇게 지혜롭지 못한가.

그 의문을 임기 말 레임덕 현상 차단과 내년 대선과의 전략적 구도라는 현실적 측면에서 풀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앞의 전제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자. 어차피 우리는 소수다. 극단적 보수는 우리편이 될 수 없다.

이를 대변하는 보수언론은 전에도 우리의 적이었고 향후 대선까지는 더욱 강한 적이 될 수 있다. 내부를 보라. 이미 여권 내 대선주자들이 언론의 눈치를 보며 정풍운동으로 내부개혁까지 요구하고 당총재에게 거역현상까지 보이지 않았는가.

외부 적과의 싸움을 통해 내부 결속을 강화해야 한다. 언론사 세무조사 초기 단계엔 사주 구속은 안된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젠 여권 어느 누구도 언론개혁에 대해 한치의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다. 당정쇄신 목소리는 잦아든 지 이미 오래다.

역대 선거에서 나타난 DJ 지지도는 대충 투표자의 30%로 나타난다. 지난 대선에서 DJP연합과 상대후보의 미숙으로 40.3%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지금은 20%대의 지지대로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DJ 지지세력은 30%를 유지한다는 게 통념이다.

임기 말에 무슨 힘든 개혁이냐는 온건파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30% 지분마저 갈가리 찢겨져 대선에 나가기도 전에 당은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을 이미 지난 정풍파동 때 겪지 않았는가.

외부 적과의 전쟁을 통해 30%의 결속을 다지면서 10% 이상의 개혁세력을 규합한다면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는 현실적 계산이 나올 수 있다. 정권재창출이 가능치 않다 해도 적어도 30% 지분의 야당세력은 그대로 남는다는 산법이 가능하다.

이런 현실적 계산과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에 언론개혁의 강도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을 것이란 게 나의 언론개혁 독해법이다.

권영빈 <중앙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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