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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 기밀유출 실상 밝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가정보원의 대북전략국 실무 핵심인 安모 과장의 전격 파면을 놓고 전례 드문 '기밀 유출' 파문이 일고 있다. 安씨가 속한 라인은 대북 정보 수집, 전략 수립, 공개.비공개 접촉 업무를 관장한다.

파문의 한복판에는 安씨가 외국 정보기관의 서울지부 요원(한국계 Y씨)한테 돈을 받고 민감한 대북한 정보를 넘겼다는 관측과 의혹이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국정원측은 "심각한 정보 유출 때문이 아니라 외국 정보 요원과 만날 경우 사전 보고를 해야 하는 규정을 어겨 기강 확립 차원에서 해임한 것" 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사전에 탐지해 유출을 차단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국가 안보의 최고 정보기관에 앞으로도 허점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갖고 대처할 일이다.

6.15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서울에서는 치열한 정보 수집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일본의 내각조사실, 중국의 국가안전부, 러시아의 해외정보국(SVR)소속 요원들이 뛰어들어 007 첩보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첩보위성.고공정찰기를 이용한 기술정보(Techint)에서 우리보다 앞서지만 인적 정보(Humint)에서 밀리면서 한.미간 대북 정보력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미묘한 갈등 양상 탓에 한.미간 정보 공조의 틈새가 생겼다는 지적이 있어 파문의 미묘함을 더하고 있다.

安씨가 속한 대북라인이 추진해온 햇볕정책을 놓고 알력설마저 정치권에 퍼져 있는 상황이다. 국민에게는 미스터리 투성이인 인사 파문인 것이다. 한나라당은 '총체적인 안보 해이 사건' 으로 단정해 정치문제화하고 있다.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은 이런 미스터리와 의혹을 씻는 일이다. 진상 규명의 핵심은 무슨 정보가 넘어갔는지를 정확히 파악해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는 일이다.

이와 함께 安씨와 '부적절한 접촉' 을 한 것으로 알려진 Y씨 문제에 대해 당당히 해당국 정보기관에 따져야 한다. 스파이 행위를 한 이유로 처벌을 받은 '로버트 金 사건' 의 진행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선처 탄원을 외면한 사례에서 보듯 미국측은 국가 정보 관리.유출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야당은 로버트 金 사건을 들어 Y씨의 신병을 확보해 전모를 캐라고 촉구하고 있다. 국정원측은 "당사국 대사관에 유감을 표명했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고 했지만 야당의 이런 주장은 참고할 만하다. Y씨가 돈으로 安씨를 매수해 정보를 사려 했다는 의혹이 나도는 만큼 해당국 정보기관도 사건 규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정보 유출 사건은 다시 터질 가능성이 있다. 정보시장이 넓어지면 정보의 유통 과정에 불법과 비리가 일정 수준 따르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우리 정보 요원들의 기강 해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직무상 취득한 정보는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정보 요원의 사명감을 새롭게 다져야 한다. 이번 일로 가뜩이나 꼬여 있는 남북관계가 지장을 받아선 안된다. 또 한.미간 긴밀한 정보 공조체제에 나쁜 영향을 주어서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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