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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과장 기밀 누설 정치권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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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1일 드러난 국가정보원의 기밀유출 사건은 정치권에도 파장을 미쳤다. "국민의 경악과 분노를 살 것" (민주당 柳在乾 국제협력특위위원장), "국기(國基)를 흔드는 문제" (한나라당 鄭亨根의원)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반응은 갈렸다. 민주당은 "신중해야 한다" 며 곤혹스러워했고, 한나라당은 "진상을 밝히고 지휘선상의 책임자를 엄중 문책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련은 "어떻게 정부를 믿겠느냐" 며 "보안누설 사건을 재조사하고 관계 책임자를 문책하라" (邊雄田대변인)고 논평을 내는 등 야당 이상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 "절차상의 문제였을 뿐" =민주당 박상규(朴尙奎)사무총장은 이날 아침 국정원에 연락, 부랴부랴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곤 "국정원법에 따르면 외국 정보기관과 접촉할 땐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어겨 징계했을 뿐" 이라며 "이런 일이 생겨 유감이지만 승인을 받지 않았다면 징계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고 절차상의 문제로 격하시켰다.

전용학 대변인도 "기강확립 차원에서 파면한 것으로, 중요한 기밀이 유출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른 얘기도 나왔다. 유재건 위원장은 "공직기강과도 관련돼 있다" 고 지적했다.

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은 "정보기관이 관련된 예민한 문제인 만큼 나중에 판단하자" 고 목소리를 낮췄다.

◇ "햇볕정책이 국가보안마저 녹였다" =정형근 의원은 "독일과 영국에선 총리가 물러났던 사안" 이라고 말했다.

권철현 대변인은 "햇볕정책에 모든 게 녹아버려 국가보안마저 구멍이 뚫렸다" 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공세 초점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첫째, 어느 수준의 정보까지 유출됐느냐는 점이다.

權대변인은 "(정권이)대북관계에서 밝혀선 안될 내용이 터져나올 것을 우려한 나머지 올바르게 일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며 "어떤 정보가 넘어갔는지 국민 앞에 밝히라" 고 요구했다.

정형근 의원도 "유출 정보가 뭔지 청문회를 열어 따지고,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둘째, 한.미, 남북, 북.미관계에 미칠 영향을 예상했다. 정형근 의원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쓰는 게 모든 것을 꿰뚫고 있기 때문 아니냐" 며 "이번 일을 계기로 대북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고 전망했다.

셋째,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국정원 내부 갈등설도 언급했다.

한 중진 의원은 "임동원(林東源)통일부 장관이 국정원의 대북라인을 직접 지휘해 국정원 내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안다" 고 말했고, 다른 의원은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국정원 내부 갈등이 불거진 것 아니냐" 고 말했다.

◇ 국정원=내곡동 국정원 청사는 이번 기밀유출 사건으로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감찰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내파트 4급 간부), "충격적인 일" 이란 반응을 보였다.

외국 정보기관과의 관계 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국정원측은 특히 정치 쟁점화를 경계했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고질적 병폐였던 외국 정보기관과의 무분별한 접촉이나 정보 유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영종.고정애.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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