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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자폐아 가정 하루하루가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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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제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주세요. " 자폐아 자녀를 둔 부모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자폐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고 갈 수밖에 없는 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폐증은 그간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야 장애 유형에 포함될 정도로 복지 사각(死角)지대로 밀려나 있었다.

중앙일보는 그동안 속으로만 앓아온 자폐아 가정의 아픔과 복지제도의 허점을 3회에 걸쳐 점검하고 우리 사회가 자폐아를 함께 안고 갈 길을 모색해 본다.

"세 차례나 검사했지만 따님은 자폐아가 분명합니다. " 1990년 소아정신과 의사의 이 한마디가 최미자(43.여)씨 가족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충남 서산에서 농사 짓던 최씨 가족은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네살배기 둘째 딸 조은이의 치료에 매달렸다.

남편이 가내 수공업을 시작했으나 매달 50만원 이상 드는 치료비를 대자니 살림은 점점 쪼들렸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94년 태어난 셋째(아들) 역시 자폐아였다. 이후 악몽같은 나날을 보냈다. 최씨 건강도 크게 나빠졌다. 고민 끝에 지난 5월 중학생이 된 조은이를 사설 보호시설에 맡겼다.

딸을 떼어놓고 오는 날, 최씨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어린 막내라도 치료해 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폐아 가정의 아픔은 비단 이들의 경우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내엔 자폐 관련 통계조차 없다.

선진국의 연구 결과로 미뤄볼 때 국내엔 3만~4만명의 자폐자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자폐와 비슷한 증상까지 포함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1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중삼중의 남 모를 고통을 겪고 있다.

자폐아는 돌출행동이 심해 다른 장애아보다 돌보기가 훨씬 어렵다. 그러나 자폐아를 위한 복지시설이나 정부의 지원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진단 및 조기 치료 시설은 대부분 사설기관이어서 적게는 월 50만원, 많으면 1백만원씩 하는 비용을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정보인(재활학과)연세대 교수는 "자폐증은 조기 발견.치료 여부가 평생을 좌우한다" 며 "적은 비용으로 진단.치료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국가 차원에서 설립하는 일이 급선무" 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운영하는 장애인복지관 중 자폐 전용은 단 한 곳도 없고, 다른 장애인과 함께 이용하는 종합복지관도 전국에 61개소뿐이다. 장애아를 낮 동안 돌봐주는 주간보호센터도 전국을 통틀어 42개, 이틀 이상 맡아주는 단기 보호 시설은 열 곳에 불과하다.

민병관.정경민.신예리 기자

◇ 자폐증이란=뇌신경.호르몬 계통의 이상 등으로 ▶의사 소통이 잘 안되고▶다른 사람과 사귀지 못하며▶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등의 증세를 보이는 장애. 흔히 자해.주의산만.편식.낯선 것에의 두려움.과잉반응.괴성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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