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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복권 (福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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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성인 다섯명 중 한명은 매주 복권을 산다. "지난 1년동안 복권을 산 경험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미국인의 절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6개의 숫자를 차례대로 골라 맞추는 로토는 가장 인기있는 복권이다. 지난해 봄 뉴저지주 등 7개주가 연합해 발행한 '빅 게임 로토' 의 경우 당첨자가 8주째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3억6천3백만달러(약 4천7백억원)까지 불어났다.

각 주유소와 편의점마다 복권을 사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하버드.예일.컬럼비아 등 동부 명문대학들의 재정적 토대가 복권에서 마련된 걸 보면 미국 복권문화도 꽤 뿌리가 깊은 편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1947년 12월에 나온 '올림픽후원권' 이다.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경비 마련을 목적으로 발행됐다.

49년 이재민 구호자금 마련을 위해 '후생복표' 가 발행됐고, 한국전이 끝난 뒤인 56년에는 산업부흥자금 조달을 위해 '애국복권' 이 발행됐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란 말을 유행시킨 주택복권이 69년 선보이면서 복권의 대중화에 불이 붙었다.

역사에 비해 우리의 복권문화는 이상과열이다. 신용카드 영수증에도 복권이 붙고, 지하철 승차권에도 복권이 붙는다. 추첨식.즉석식을 합해 8개기관에서 13종의 복권이 발행되고 있다. 한해 시장 규모만 5천억원이 넘는다. 올 가을부터 경기 스코어에 따라 당첨금을 지급받는 경기복표까지 등장하면 복권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내 복권 사상 최고금액인 25억원의 복권에 당첨된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이 나왔다. 6천원을 주고 산 3장의 복권이 나란히 1.2.3등에 당첨됐다고 한다. 99년 미국에서 나온 사상 최대 당첨금 1억9천7백만달러(2천2백50억원)에 비할 건 아니지만 단돈 만원이 아쉬운 서민들에게는 입이 벌어질 일이다.

역사적으로 복권은 조세저항을 피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편법으로 종종 이용됐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각 도시는 각종 사업을 벌이면서 복권을 팔았고, 프랑스 루이 왕조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으면서 복권을 발행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B F 스키너는 처벌이나 강압만이 아니라 보상이나 미끼도 통제의 수단이라면서 대표적 예로 복권을 들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이다. '대박' 의 달콤한 유혹에 빠진 서민들의 주머니돈을 긁어모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국가가 할 일을 다하면 복권 수요는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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