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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조운 '석량(夕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볏잎에 꽃힌 이슬 놀랠세라

부는 바람

빨아 대룬 적삼 겨드랑이

간지럽다

예 벌써 정자나무 밑에

시조(時調) 소리 들린다.

- 조운(1900~?) '석량(夕凉)'

조운 시조의 특징은 이처럼 낡은 소재를 대담하고도 산뜻하게 현대화하는 데에 있다. 벌써 반세기 전의 것임에도 전혀 낡아보이지 않는 것은 이 시와 시인이 1930년대의 모더니즘을 정면으로 돌파해왔기 때문. 즉 양풍(洋風)을 제대로 겪은 것이기에 국풍(國風)으로서도 새로운 것. 그는 가람 이병기와 함께 현대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시인이다.

볏잎에 농부의 땀방울 같은 이슬이 맺히는 저녁 무렵, 언뜻 부는 한줄기 바람에 빨아 다린 삼베 적삼을 꺼내 입고 시원한 정자나무 밑을 찾아가는 한 촌로(村老)의 저녁 풍경이 자못 여유롭다.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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