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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법치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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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법은 '도덕의 최소한(das ethische Minimum)' 이라고 한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한 이 말은 법의 생성기원을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된다.

즉 '좋은 말로 되던 시절이 지나자 많은 윤리도덕 가운데 최소한 이것은 지키자' 며 만든 것이 법이란 얘기다. 법 없이도 잘 살던 원시사회를 지나 사람 사이에 계급과 갈등이 생기고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 법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인류 최고(最古)의 법은 BC 2350년께 메소포타미아의 우루카기나 법전이다. 도둑질과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사형에 처한다는 등의 규정을 둔 이 법전은 그러나 기록에만 나올 뿐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법전은 BC 2050년께 수메르의 우르나무 법전이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BC 1700년께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법전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비문이 소장돼 있는데, 이 법전의 '눈에는 눈' 이란 이른바 탈리오의 법정신은 오늘날 중동국가들의 법에 그대로 계승돼 있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 이전까지의 평온한 시대엔 법이 예(禮)를 보완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전국시대 급격한 사회변동을 거치면서 예만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禮治)이 불가능해지자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法治)는 법가(法家)가 등장했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은 한비자(韓非子)지만 법치를 처음 설파한 인물은 제(齊) 환공(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룬 관중(管仲)이다. 청 말의 량치차오(梁啓超)는 『관자전』에서 "법치는 다스림의 가장 옳은 제도로, 세계 역사상 이를 가장 먼저 들고 나와 체계를 세운 사람이 관자다" 고 했다.

근대적 의미의 법치주의는 영국의 '법의 지배(rule of law)' 와 독일의 '법치국가(Rechtsstaat)' 란 용어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독재를 거부하고 법에 따른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변협이 현 정부의 개혁을 "법치주의 후퇴" 라고 비판, 파문이 일고 있다. 입만 열면 민주와 인권, 그리고 '법대로' 를 강조해 온 현 정권으로서는 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여당에선 펄펄 뛰고 있지만 진짜 법을 아는 사람들이 한 말이니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법(法)이란 무엇인가. 물(水)이 가는(去) 것처럼 순리에 따르는 게 법이요, 그런 정치가 법치다. '윗분의 말씀' 이 모든 걸 결정하는 정치는 아무리 법치라고 강조해도 인치(人治)일 뿐이다.

유재식 베를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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