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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지금 ‘인문학 바람’ … 매달 두차례 니체·칸트·동양고전 등 강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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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전략의 세 가지 요소는 타이밍, 공격 부위, 속도입니다.”

7일 오전 7시30분 서울 역삼동 포스코 본사 서관 4층 아트홀. 포스코 간부 360여 명을 앞에 두고 박재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손자병법과 전략경영’ 강의가 시작됐다. 청중석 맨 앞줄 가운데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앉았다. 정 회장을 비롯해 청중들은 열심히 메모했다. 박 교수가 “전투에서 매번 이기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 위주의 전쟁 방식이 필요하다. 전투에서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향후 10년을 내다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메모하는 청중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포스코에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이날 강의도 그중 한 장면이다. 포스코가 지난해 5월 시작한 ‘수요 인문학 강좌’의 15번째 강의였다. 강좌는 ‘소크라테스에게 오늘의 경영을 묻다’(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시작해 지난해 니체·칸트·괴테 등 대표적인 서양 철학자와 그리스신화, 군주론 등을 섭렵했다. 올해는 강좌 수를 매달 두 차례로 늘렸다. 상반기엔 ‘동양 고전과 현대경영의 만남’이란 주제 아래 박재희 교수의 강의로 대학·논어·맹자·중용·손자병법·도덕경·장자·한비자 등을 다룬다. 하반기엔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과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이 강연하는 ‘동양의 통치역사’와 ‘서양사와 경영’ 강좌가 예정돼 있다. 1시간30분간의 수요 강좌 대상은 팀장급 이상 모든 간부 900여 명이다. 포항과 광양에서는 같은 시간 영상 강의를 듣는다.

인문학 강좌는 정준양 회장의 작품이다. 지난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창조경영을 제시한 그는 철학·역사 등의 인문학적 소양이 창조경영의 핵심 요소라고 봤다. 특히 엔지니어가 많은 포스코의 기업문화에 창의성이 꽃피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평소 “철을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포스코 임직원은 철학(鐵學)적 지식과 철학(哲學)적 사고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말해 왔다. 그가 통섭형 인재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회장은 올 2월 신입사원과의 대화에서 “여러분을 통섭형 인재로 키워 나가겠다”며 “엔지니어는 문과 계통을, 문과는 기술 계통을 다 섭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겐 한걸음 나아가 ‘잘 노는 인재’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잘 놀고 즐길 줄 알아야 창의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아예 본관에 약 1200㎡ 규모의 놀이방을 만들어 두고 직원들에게 노는 것을 권장할 정도다.

그는 직원들에게 “창의는 통찰에서 나오고, 통찰은 관찰에서 나오며, 관찰은 미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문학 바람은 포스코의 조직문화와 경영 전략에 적잖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포스코가 국내외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그 변화의 단초로 보는 시각도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공계 출신이 많은 조직 특성상 예전에는 미래 가능성 등을 보고 투자하는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서 “최근 사내 의사결정과 조직문화가 한층 유연하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인문학 경영’ 발언들

▶ “포스코에서 진짜 두각을 나타내려면 잘 놀아야 한다. 잘 놀아야 창의성이 나온다.”(2009년 3월 신입사원과의 대화)

▶“잘 놀고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2009년 12월 사내 행사)

▶ “여러분을 통섭형 인재로 키워나가겠다. 엔지니어는 문과 계통을, 문과는 기술 계통을 다 섭렵해야 한다.”(2010년 2월 신입사원과의 대화)

▶“철학적 소양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자양분”(평소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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