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고 동문 ‘티끌 장학금’ 21억 모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모금액 약 21억원, 연간 평균 지급 장학금 1억5000만원, 혜택받은 학생 수 1000여 명.

인천 제물포고 졸업생들이 만든 ‘재단법인 인중·제고 장학회’의 7년간 성적이다. 이 학교 졸업생 1000여 명은 CMS(자동이체) 소액 기부, 백년 기부, 기부 보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푼 두푼 장학금을 모았다.

이 장학회도 다른 학교처럼 소수의 고액 기부자 위주로 활동했다. 하지만 2003년 재단법인이 되면서 변신을 시작했다. 당시 장학회 운영진은 다수의 졸업생이 은행의 CMS를 이용해 매달 1만원씩 장학금을 모으는 ‘만원만’ 운동을 고안했다. 독특한 모금 방식과 “모두의 1만원은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발상은 졸업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3개월 만에 1000여 명의 졸업생이 참여했다.

‘개미 기부자’들의 활약이 뜨거워지자 ‘코끼리 기부자’도 나왔다. 3대가 100년 동안 매년 10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백년 기부’가 대표적이다. 22회 졸업생 류연식(51)씨는 2005년 아버지(지난해 작고)를 모시고 재단 측과 백년 기부를 체결했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아버지 덕에 풍족한 가정에서 자란 연식씨는 현재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장학금의 정식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딴 ‘류영철 장학금’이다. 연식씨는 “아버지를 위해 뜻있는 일도 하고, 모교 사랑도 실천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말부터 매년 약속을 지켜 현재까지 4000만원을 기부했다. 현재 군에 있는 아들(24), 미래의 손자가 그의 뒤를 잇게 돼 있다.

이달부터는 ‘기부 보험’도 시작된다. 기부 보험은 동문이 생명 보험에 가입, 보험료를 내다가 보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장학회가 혜택을 받도록 설정하는 방식이다. 장학회 측은 “현재까지 5명의 동문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재단 사무실에서 ‘1호 기부 보험’ 가입자의 보험 약정식이 열린다. 장학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모은 수입은 총 21억원. 매년 예산은 2억원 정도다. 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매년 1억5000만원 이상이 학생에게 돌아간다. 한 해 혜택 받는 학생 수는 평균 150명. 장학회 측은 혜택 학생을 성적 우수자뿐 아니라 성적 향상자, 동문 자녀 등으로 다양하게 정했다. 지난 학기에 전교 500등을 한 학생이 이번 학기에 300등을 했다면 성적 향상자에 해당돼 3박4일가량의 외국 연수를 지원받는 식이다.

2002년 말 장학회의 총무를 맡아 CMS 소액 기부 방식을 처음 제안했던 동문 황효진(51)씨는 “동창회가 기부 문화를 퍼 나르는 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송지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