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명숙 새 수사 지방선거 이후로 검토해 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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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검찰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수사를 6·2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검찰로서야 혐의가 있으니 정상적 절차에 따라 수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 수사는 진정성과 상관없이 이미 너무나 정치적인 사안이 돼버렸다. 지방선거가 50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검찰이 속전속결로 기소하고, 법원이 집중 심리(審理)를 한다고 해도 1심 판결까지 서너 달이 걸린다. ‘5만 달러 수수 의혹’도 기소에서 판결까지 108일이 걸렸다. 어차피 지방선거까지 결론이 날 수 없게 돼 있다. 설령 한 전 총리의 혐의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하더라도 논란이 증폭될 게 뻔하다. 무엇보다 선거까지 겨우 한 달여 남았다. 정치적으로 매우 뜨거운 시기에, 바로 직전 무죄 판결을 받은 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를 검찰이 다시 문제 삼는 상황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당장 정치적 보복이니, 선거용 기획수사니 하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한 개인의 비리 여부로 지방선거 전체가 엉뚱한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

검찰은 정치 일정을 감안하는 것이야말로 ‘정치 검찰’이 아니겠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제보가 있었고, 압수수색도 했고, 자백까지 받은 상황에서 수사를 중단할 수 없지 않으냐고 한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별건 수사가 아니다”며 “정치적 이유로 뒤로 미루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일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시기도 문제고, 모양새도 영 아니다. ‘5만 달러’에 체면을 구긴 검찰이 ‘9억원’으로 반전(反轉)을 꾀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당한 수사라 해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 끈을 고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수사가 어떤 식으로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미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국민의 법정에 서겠다”고 정치화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수사를 강행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정치적인 사안으로 변질시켜 수사 자체가 어려워질 소지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