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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얼쑤~ 4남매 국악 가족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모두 이렇게 같은 길을 계속 걸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

일란성 쌍둥이 형제를 포함한 4남매가 모두 국악의 길을 걷고 있다.

주인공들은 광주예술고 2학년 국악과의 실장.부실장을 맡고 있는 쌍둥이 박준호.선호(16)군과 누나 선영(20.전남대 국악학과2)씨와 혜민(18.전남대 국악학과1)양.

이들의 전공 분야는 다르다. 준호군은 판소리를 하고, 동생 선호군은 '깡깡이' 라고도 불리는 해금을 켠다. 큰 누나는 대금을, 작은 누나는 피리를 불고 있다.

이들이 국악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8년 전 고향인 전남 해남에서 국악과 성악.가요를 한 곡조씩 하던 아버지와 함께 문화원 국악교실에 다니면서부터다. 동네 아저씨.아주머니들의 틈에 끼여 북을 치고 소리를 하면서 우리 가락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주위의 권고로 아예 입문하게 됐다.

동생들을 데리고 자취하는 선영씨는 "해남에는 정식으로 배울 만한 곳이 없어 거의 매일 멀리 광주를 오가며 공부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고 말했다.

학교 수업을 6교시까지만 받고는 3시간 가량 버스를 갈아타고 광주에 도착, 학원에서 강습을 받은 뒤 다시 해남 집에 돌아가면 오후 11시가 넘곤 했다. 네 명 모두 이같은 고생 끝에 광주예술고에 들어갔다.

그러나 3년 전 더 힘들고 가슴아픈 일을 겪어야 했다. 자신들을 국악의 길로 이끌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후 어머니 김명희(48)씨 혼자 해남에서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그래서 쌍둥이가 대회에 출전할 때면 고수(鼓手)를 대는 비용이라도 덜기 위해 형의 판소리에는 동생이 북을 쳐주고, 동생의 해금에는 형이 장구 장단을 해주고 있다.

어머니 金씨는 "전공 분야가 같고 서로 경쟁하다 보면 상처받는 아이가 나오고 우애가 깨질까봐 각기 다른 길을 걷도록 했다" 며 "아이들이 전국대회에서 입상할 때면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 이라고 자랑했다.

해남=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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