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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반일 외길'… 능사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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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요즘 한국과 일본은 도저히 월드컵을 함께 치르기로 한 나라로 보이지 않는다. 역사교과서.야스쿠니신사.꽁치조업 등 3개 현안에서 평행선을 달리며 팽팽하게 대립 중이다.

한국 쪽에서는 정부는 물론 학교.민간단체.지방자치단체들도 잇따라 대일(對日)교류를 중단하는 등 범국민적 반일이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때가 때인 만큼 화끈한 반일도 필요하겠지만 차가운 머리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의 반일이 과연 전략적인지, 아니면 감정적이고 무작정인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지금 기세로는 마치 국교를 단절하기라도 할 듯하지만 현실로 부닥치는 일본은 반드시 적대시해야 할 상대만은 아니다.

지난주에는 산업은행이 일본에서 5백억엔을 조달했고 이번주에는 한국 벤처기업의 일본 진출을 위한 지원센터가 도쿄(東京)에서 문을 연다.

또 세계적인 전자업체 NEC는 이례적으로 한국 벤처기업 커머스21의 소프트웨어를 도입했으며 일본의 연예프로덕션 호리프로는 한국 연예인들의 일본 진출 업무를 대행키로 했다.

반일.친일 관계 없이 양쪽이 모두 이익을 보는 '윈윈 게임' 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교류까지 우리가 나서서 끊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청주시로부터 일방적으로 학교 교류 중단 통보를 받은 돗토리(鳥取)현만 해도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대표적인 지자체다.

일본에서 최초로 재일교포를 일반행정직 공무원에 임용하기도 했다.

이런 곳과의 교류를 끊으면 우리 스스로 일본의 친한파를 팽개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과의 교류 중단이 강철 같은 반일의지를 표시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퇴행적인 반일은 국내정치용으로 비춰질 뿐이다.

오히려 양식있는 일본인들을 설득하고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이들을 일본 정부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생각해볼 때다.

일본을 피하기보다 기회를 가급적 많이 만들어 만나는 자리마다 우리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

적어도 교과서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입이 아프게 말하고, 일본은 귀에 못이 박이게 듣도록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교과서 한번 잘못 만들면 이렇게 시달리는구나' , 궁극적으로는 '한국과의 대립은 일본 국민 의사에 반한다' 고 일본 정부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들자는 말이다.

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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