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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말말말' 여야 비방은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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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앙일보 오피니언 면의 '말말말' 은 열독률이 높은 고정란이다. 세상사의 이치와 본질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마디로 표현하는 '언어의 미학(美學)' 이 독자들에게 잔잔한 미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지의 '말말말' 은 13일자부터 당분간 여야 대변인단의 발언을 다루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변인단의 논평이나 성명이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다. 정치는 말이란 수단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지만 그 말이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여야 대변인단이 지난 열흘간 사용한 말들을 살펴보자.

▶민주당=사이비 법치주의자, 더위 먹었느냐, 양두구육(羊頭狗肉)의 부도덕성, 제대로 정신이 박혔나, 악의적인 발상, 얄팍한 수법, 용서할 수 없는 망발, 낯두꺼운 주장, 교태가 역겹다.

▶한나라당=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가관, 악랄한 공작, 가증스럽다, 망국적인 헛소리, 돼지 눈엔 모든 게 돼지로 보인다, 조폭(組暴)식 망언, 정권나팔수, 습관적 궤변, 살민(殺民)정권.

아마도 여야 대변인단은 자신들이 이런 단어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는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루 이틀 된 현상이 아닌 일종의 '정치권 만성질환' 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13일 여야 대변인은 자성론을 폈다. 민주당 전용학(田溶鶴)대변인은 "아픈 충고로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고 했고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도 "한 자 한 자 조심해서 쓰겠다" 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이 워낙 말이 안되는 공격을 하니까" 라는 꼬리표 달기를 잊지 않았다.

1980년 중반 미.소간의 군축회담이 난관에 봉착하자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은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에게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할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서로 협조해 나가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아무리 긴장되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품위와 존경심으로 귀하를 대하고 싶은 나의 심정을 알아주십시오" 라고 정중히 말했다.

미.소간의 군축회담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성공하기까지는 이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인간으로서의 품위' 를 지키려고 노력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런게 '진짜 정치' 다.

중앙일보 '말말말' 은 여야 대변인단이 '말말말' 난으로 다시 되돌아와주길 간절히 바란다. 야비한 비방과 욕설이 아니라 한 차원 높아진 해학과 정치적 유머로.

정치부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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