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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한의학박람회] 조영식 박사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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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의학이 대체의학이라는 옷을 입고 서구로부터 역류하고 있다.서양의학 도입 1백년,우리의 전통의학이 홀대(?)받는 동안 선진국 의학계는 엄청난 연구비를 투입하며 대체의학의 과학화와 세계 시장 공략을 추진하고 있다.

조영식(趙永植·81)경희학원장은 1965년 폐교 위기의 동양의과대학을 인수,한의대를 6년제로 승격시키면서 우리나라 한의학의 교육 체계를 만든 인물이다.

이후에도 동서의학대학원 설립과 동·서 협진(協診)등을 통한 제3의학을 주창하며,한의학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앞장서 왔다.오는 8월30∼9월3일 경희대학교와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하는 제3회 한의학국제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조영식 학원장을 만나 한의학의 현황과 발전 대책을 들어봤다.

-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의 대체의학 바람이 드세다.

제3의학으로 동서의학의 결합을 주창하고, 중국보다 먼저 한의학을 세계에 소개했던 분으로서 현재 우리나라 한의학의 위상을 어떻게 보나.

"1973년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를 한국에 유치했고, 77년 미국에서 열린 4차 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할 정도로 우리나라 한의학은 일찌감치 세계 진출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후 미국은 물론 중남미.유럽으로부터 공동연구 제의가 있었고, 실제 많은 연구원이 다녀가기도 했다. 하지만 한의학이 정책에서 소외되고, 양.한방 협진과 양방 의사들의 한방 푸대접으로 공동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

서구의 대체의학이 중국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동양으로 역수입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만성질환이 늘면서 대체의학의 과학화에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다.

미국의 경우 93년 3백만달러에서 시작한 연구비는 99년 5천만달러로, 그리고 올해는 1억달러로 배증하고 있다. 대체의학센터 역시 96년 10개 대학에서 지금은 16개 대학으로 늘어났다. 양적인 면에서 우리도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

- 한의학 발전이 더뎠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옛날 얘기부터 하겠다. 처음 한의대를 인수하자 당시 의사 출신 보사부장관이 '한의사들 앞잡이 노릇을 하지 말라' 고 했을 정도로 온갖 압력이 들어왔다. 양의사들 반대 때문에 한의대교수 월급을 가장 적게 줬는데 이를 평준화하는 데만도 3년이 걸렸다.

심지어 한방교수들과 협조할 것을 조건부로 내세워 양방 의사들을 채용했지만 이 또한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에야 동서의학대학원을 설립했고, 본격적인 동서 협진도 불과 2년 전부터 시작됐다. 한의학이라는 국가적인 훌륭한 자원이 30여년간 묻혀 있었던 것이다. "

- 한의학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나는 우리나라 한의학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진 않는다. 물론 미국의 연구비 투자는 세계 최고다. 동양의학 면허를 주는 주(州)만도 40여곳에 교육기관도 1백여곳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미국의 대체의학 연구는 실험을 통해 병리현상을 규명하고 대응요법을 찾는 서양의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주역(周易)이라는 동양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 전통의학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처음 한의대를 인수한 것은 이제마 선생이 저술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읽고 나서다. 철학과 과학이 만나야 새로운 제3의학이 나올 수 있다. 국민의 한방에 대한 신뢰도 역시 한의학의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

-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중(中)의학은 어떤가.

"중의학은 다양한 치료기술과 광활한 땅에서 생산되는 한약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성(省)마다 국가 차원의 연구비가 책정.지원되고 있으며,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건강보조식품으로 인정받은 것들도 상당수 있다.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의 연합체인 중의약관리국이 미국에서 출범해 중의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의학이 지나치게 상업화하면서 전통의학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동양의학이라는 뿌리를 버리고 서양의학을 따르면 곧 한계에 이른다. 중국 전역의 중의학계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중의학의 과학화 역시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중의학과의 교류방안은 없는가. 그리고 한의학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은.

"중의학은 경쟁자며 협력 대상이다. 현재 중국의 유수 대학과 자매결연을 통해 실질적인 교류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상호 초청 및 방문을 통해 자료를 활발하게 교환하고 있다. 한방병원은 외국인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한방을 소개하고 체험케 하는 '헬스투어 경희' 를 추진하고 있다. 대학 차원에서는 미국 스탠퍼드대와 한의학 연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 한의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우수한 인재 양성과 새로운 교육체계 수립도 중요하다.

"우선 한명의 학생이 양.한방 의사 자격증을 동시에 취득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학점을 상호 인정해 제3의학이라는 신의학을 개척하고 연구할 인재를 키워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교육 및 연구방향이 양적이었다면 앞으로는 질적인 부분에 집중시켜야 한다. 동서의학대학원을 통해 세계의학계로 진출하는 한의사들을 양성하겠다. 또 한의대의 임상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

- 중앙일보와 공동 개최하는 한의학국제박람회에 대한 기대도 클텐데.

"국제박람회는 한의학의 본산인 경희대가 한의학의 국제화를 위해 의지를 갖고 벌이는 사업이다. 우리 한의학을 국제적으로 알리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의학 관련 산업들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박람회는 특히 중국을 비롯해 홍콩.일본.대만.미국 등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국제박람회며, 전국 한의원과 한의과대학들의 참여를 통해 한의학의 대중화에도 기여를 할 것이다. "

- 희수(喜壽)를 훨씬 넘긴 81세의 나이에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계신다. 요즘 각별하게 관심을 갖는 일은.

"밝은 사회클럽 국제본부 총재로서 지난 4월 연차대회를 인도에서 개최했다. 국제평화와 인류애 구현을 위해 세계 지도자 1백인이 모여 르네상스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르네상스 운동의 본질은 지구인이 공존공영하는 인간 중심 사회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또 오는 9월 유엔 제정 제20주년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서울에서 열리는 '문명간의 대화의 해'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 30여개국 학자 1백여명을 포함, 5천여명이 참여하는 이 학술대회의 주제는 '문명간의 대화를 통한 지구공동사회 건설' 이다. "

대담 = 생활레저부 고종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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