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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 앞으로 10년이 마지막 기회] 5. 한국 농업-움트는 희망의 싹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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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지난 6월 충남 홍성군 문당리의 환경농업마을 주형로 대표(맨 왼쪽)가 전남 장흥에서 견학온 농민들에게 오리농법으로 벼 재배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홍성=강정현 기자

▶ 오리가 병충을 잡아먹어 농약이 필요없고 배설물은 비료가 되는 ‘오리 농법’.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 29번 국도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수백평의 논과 논 사이에 설치돼 있는 파란 그물망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망 안에서 오리떼가 논을 휘젓고 다녔다.

이 마을 환경농업교육관 주형로(50) 대표는 "오리들이 병충을 잡아먹어 농약이 필요없는 데다 오리의 배설물은 비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오리 농법이다. 오리를 이용해 키운 유기농 쌀(80㎏) 한가마의 소매가격은 26만원 안팎. 일반 쌀값의 두 배 수준이다.

하지만 돈이 있어도 일반 소매점에서 이 쌀을 구할 수 없다. 모두 계약재배하기 때문이다. 매년 6월과 10월에 도시 소비자들이 마을을 찾아 쌀 재배계약을 하고 논에 오리를 풀어주는 행사를 한다. 도시 소비자들은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며 감자 캐기.두부 만들기 등 농촌체험을 한다. 계절별로 다른 체험 행사에 참여하려면 1인당 1만2000~3만원을 내야 한다.

2001년부터 이렇게 농사와 관광을 결합시킨 후 지금까지 문당리를 찾은 도시 관광객과 견학 인원은 1만3000여명에 달한다. 연평균 3200여명이 찾은 셈이다. 내친김에 마을에 단체 민박시설은 물론 농촌박물관.찜질방도 만들었다.

친환경 농업과 농촌 관광을 접목시킨 새로운 농촌 개발 모델의 싹이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농촌의 특색을 살려야=정부는 지난 1월 각 마을과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을 살린 개발 계획을 만들어 오면 16곳을 뽑아 한 곳에 70억원씩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누에가 유명한 곳은 비단 마을로,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지역은 전통가옥 체험마을로 육성하는 식이다.

그러나 각 지자체의 개발 계획은 모두 퇴짜를 맞았다. 농촌이 가진 장점을 살리기보다는 도시를 따라가는 개발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특색을 살린 개발은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경기도 화성의 양감면 요당1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360여년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야트막한 뒷산이 있다. 소를 키우는 집이 많아 분뇨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을 풍경을 도시민에게 추억 상품으로 팔기로 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은행나무 마을'이라고 붙이고 홍보에 나섰다. 축산 농가가 많은 점을 활용해 국내에선 좀처럼 해보기 힘든 치즈 만들기 체험 행사를 올 1월 마련했다. 분뇨 냄새가 나는 축산 농가를 훌륭하게 활용한 것이다.

경남 남해 다랑이 마을도 좁고 작은 계단식 논이 많은 특색을 십분 활용했다. 다랑이 논은 물 대기가 어려워 농업용으로는 좋은 논이 아니다. 그러나 다랑이 논을 도시민의 볼거리로 활용하면서 이 마을의 지난해 소득은 2년 전보다 50% 늘었다. 고생의 상징이던 다랑이 논이 번듯한 관광자원으로 변했다. 문화재청은 최근 이 논들을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예고했다. 김주성 다랑이 마을 추진위원장은 "농촌을 관광자원화하는 것이 쌀시장 개방 등 농업 개방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 품질관리가 관건=친환경 농업을 시작하더라도 어떻게 품질관리를 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소비자에게 농산물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양을 생산해도 의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기도 용인의 원삼 농협은 '파란하늘 맑은 햇쌀'이라는 유기농 쌀로 유명하다. 논에 오리를 풀어놓는데 그치지 않고 쑥.미나리.아카시아 등의 녹즙과 당귀.감초 등 한약재를 섞은 자연 영양재를 화학 비료 대신 뿌린다. 단순히 믿을 만한 먹거리를 넘어 '보약'의 개념을 도입한 웰빙 식품으로 개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김준기 상무는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 취향에 맞춰 상품을 개발한 결과 일반적인 농법보다 소득이 20% 이상 많다"며 "매년 올린 판매이익의 상당분을 품질관리에 재투자한 결과"라고 밝혔다.

전라북도 김제시 수롱리의 천지원 영농조합은 조합원 5명이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으면서 채소를 재배해 연간 2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일반적인 농법으로 재배하는 경우보다 소득이 두배 이상 많다. 김병기 대표는 "소비자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올 겨울부터는 소비자가 믿을 수 있는 농장이라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농장에서 소비자를 직접 초청해 김장축제를 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허상만 농림부 장관은 "앞으로 10년 내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지금보다 40% 줄이면서 친환경 농법의 도입을 확대할 것"이라며 "농장에서 식탁까지 철저한 위생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산 농산물의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남해=특별취재팀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

◆ 일본 ▶노부가즈 다니구치 도쿄대 교수▶테루야 사카이다 니가타현 농림수산부 실장▶오사나이 요시베 쌀 갤러리 소장▶히로후미 고바야시 전국농협중앙회 WTO.FTA 대책실장▶김홍우 주일대사관 농무관▶김진영 농수산물유통공사 도쿄 농업무역관장

◆ 중국 ▶시홍샤 징허 유한공사 공장장▶왕유조우 중다신디 부사장▶홍성재 주중대사관 농무관▶정원용 농수산물유통공사 베이징 농업무역관장

◆ 미국 ▶김명환 UC 데이비스대 파견교수

◆ 프랑스 ▶코린느 캐캐르 콤팡여성농민회 회장▶장 밥티스트 띠보 캔느 포도주수출조합 이사▶하석건 지역아카데미 박사▶명을재 동부한농화학 친환경농업팀장

◆ 네덜란드 ▶더크 얀센 알스미어 경매장 경매 매니저▶이병국 플라워가든 사장▶윤장근 농수산물유통공사 네덜란드 농업 무역관장

◆ 한국 ▶최용규 세계농정연구원장▶이태호 서울대 교수▶황석현 쌀 전업농철원군연합회장▶안병호 안성마춤 한우회장▶윤원근 안성농협사업연합 단장▶김병준 안성시 유통팀장▶김주성 다랭이마을 테마추진위원장▶주형로 홍성 환경농업교육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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