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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열린 경제 맞습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선배, 안녕하셨습니까. 미국 연구소 생활을 마치고 방금 귀국했습니다.

미국 좋더군요. 열린 나라니까 물건 값이 쌀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쌀 줄은 몰랐습니다. 혼마 골프채가 국내가격의 3분의1도 안되는 값이더군요. 한 세트를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높으신 분이 선물로 받아 물의가 빚어지면서 주변에서 귀국길에 가져가지 말라고 조언을 합디다. 그래도 그냥 들고 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입국할 때 골프채를 휴대한 여행객들은 별도의 세관심사대를 거치게 하더군요. 또 입가에 냉소를 품은 세관원은, 골프채를 만지작거리며 "이건 비싼 건데" 를 연발하며 (이삿짐이라서)관세를 물리지 못하는 걸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참기 어려운 이런 대우도 엄청나게 절약해 골프채를 산 대가라고 생각하니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제 통상교섭본부장께서 유럽연합(EU)상공인 모임에서 "외제차 보유자에 대한 세무조사는 하지 않는다" 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지난해 11월 말 캐나다에서의 한국 경제개혁에 관한 순회설명회 때 어느 변호사가 같은 질문을 했던 게 생각나는군요.

비교적 한국 사정을 꿰차고 있는 듯한 그 사람은 "외제차 보유자를 탈세혐의자로 파악하던 관행이 폐기된 지 오래다" 라는 제 설명을 믿으려 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귀국할 때 지금 타고 다니는 도요타 자동차를 가지고 가려 한다. 그 후에도 내가 세무조사를 받지 않으면 당신 말 사과하겠느냐" 고 했었습니다. 우리의 흔들림없는 개혁과 개방 의지를 믿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金선배도 계신데서 공개적으로 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산품 애용이라는 애국심이 발동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요즈음처럼 언론사와 그에 속한 언론인들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외제차를 들여 왔다가, 수입차 보유자로서든 아니면 언론인으로서든 세무조사를 당할지 모른다는 주변의 조언에 오금이 저려서였습니다.

그제는 또 산업자원부 장관께서 "수출활성화를 위해 하반기 중 무역협회 주도로 칠레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한 민관합동 대책반을 구성키로 했다" 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의아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 정부가 이미 1998년 말부터 FTA 추진을 주요 정책목표로 정한 바 있고 칠레와 협상을 벌인 지도 몇해가 되거든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FTA 연구를 하던 중, 관계관에게 칠레를 포함한 외국정부와의 FTA 협의가 어찌 돼 가는지 문의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웬 뜬금없는 FTA 얘기냐" 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자유무역이니 개방을 얘기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더군요. 그래서 경제규모가 크지도 않고 머나먼 남미 칠레와의 FTA협상이 지금까지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안타까운 얘기지요.

세계 최대의 국내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라는 거대 자유무역권으로 모자라 전미자유무역협정(FTAA)협상을 2005년까지 끝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우리와 함께 세계 주요 무역국 중에 가장 폐쇄적인 시장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일본이 싱가포르.칠레 등과 자유무역협정을 이미 타결했거나 현재 추진하고 있고, 중국조차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키로 했습니다. 우리만 외톨이가 될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개방과 관련해 불과 3년 전과는 너무 달라진 우리의 생각에 저는 놀라고 있습니다. 개혁과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테니 우리에게 제발 많이 투자해 달라고 애원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기 힘들게 됐습니다. 안타깝습니다. 金선배. 이 나라, 열린 경제 맞습니까.

김정수 경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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