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성선·송수권·나태주 3인시집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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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달 타계한 이성선 시인의 사십구재가 21일 강원도 백담사에서 열렸다. 속초에서 태어나 평생 설악산과 동쪽바다를 가난하게 읊어온 이시인은 유언대로 죽어 백담계곡에 뿌려졌다.

이날 사십구재에 참여한 경향 각지의 시인과 친지 1백여명은 이제 이시인이 시인들의 마음 속에 가난한 별, 순수 서정 시혼(詩魂)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빌었다.

이와 때를 맞춰 소위 지방 시인으로서 이시인과 함께 순수 서정을 일궈왔던 송수권.나태주 시인이 3인시집 『별 아래 잠든 시인』(문학사상사.6천원)을 펴냈다.

이시인의 유작시를 비롯해 3인의 시 1백여편을 싣고 있는 이 시집은 '시의 본향 자연을 노래한 3인 시집' 이란 부제에서 잘 드러나듯 시류에 탓을 두고 결코 꾸짖을 수 없는 서정의 아름다움과 깊이가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시집 머리에 실린 발문을 통해 오늘날 잘못된 문단 행태를 꾸짖고 있어 주목된다.

"시란 무엇이랴? 자기 영혼을 응시하지도 못하고 가장 부도덕한 방법으로 문화패권주의에 편승, 민족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함몰되어 합종연횡으로 판을 치는 도당(徒黨)문학이 진정한 문학은 아닐진대, 한 시대를 관통하면서 전리품만을 사냥하는 노욕으로 찌든 시인들이 얼마나 많이 솟아났던가. (중략)중앙의 중앙화를 보듬고 귀족 행세로, 충성 메모로 대가연하는 그 행태에 우리들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는지 모른다. "

설악산.계룡산.지리산 한자락씩 보듬고 아름다운 서정을 일군 '변방의 시인' 셋 중 한명이 먼저 가서 억장이 무너지는 비통함 때문인가? 정치현실과 패거리, 그로 인한 중앙 패권화에 찌든 작금의 문학을 나무라는 소리가 섬뜩하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불경스런 협잡에 걸리지 않고 잘 살다간' 고인의 시의 길을 따라 앞으로 가장 깨끗한 시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우리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그대 꽃이 되고 풀이 되고/나무가 되어/내 앞에 있는다 해도 차마/그대 눈치채지 못하고//나 또한 구름 되고 바람 되고/천둥이 되어/그대 옆을 흐른다 해도 차마/나 알아보지 못하고//눈물은 번져/조그만 새암을 만든다/지구라는 별에서의/마지막 만남과 헤어짐//우리 다시 사람으로는/만나지 못하리. "

나태주 시인은 위 시 '별리' 전문에서와 같이 이성선 시인과의 헤어짐을 노래했다. 지구에서 사람으로는 만나지 못하지만 우주적인 그 무엇으로 만날 것을 원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언뜻이라도 그 무엇으로 만날 것을 희구하는 것 또한 욕심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더러운 세상에 욕 한번 시원하게 하는 것 또한 순수시인에게는 하찮은 짓거리 아니겠는가. 사십구재에서 백담사 큰스님은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산 자가 무슨 말을 하리요" 라며 짧게 법문을 끝냈다. 이시인도 시로써 자신을 텅텅 비우고 돌아갔다. 빈 몸으로 백담 계곡에 흩뿌려지며 마음.마음들을 깨끗이 울릴 새 악기가 되었다.

"내 몸이 다 비어지면/그대 곁에 가리라/겸허한 손 깨끗한 발로/그대에게 가서/쉬리라. /잠들리라. /그대 영혼의 맑은 사랑을/내 빈 그릇에 담고/내 꿈을 그대 가슴에 담아서/잠 속에 눈부신 나비가 되리라. /금빛 침묵의 땅에/꽃처럼 떨며 열려서/사랑을 고백하리라. /티 없는 눈빛으로/그대와 함께 걸어 강에 가서/엎드려 물을 마시리라. /노래 부르리라. /다 비우고 빈 몸으로 깨어나/새 악기가 되어서. " ( '내 몸이 비어지면' 전문)

백담사=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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