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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환자의 흡연-폐암 인과관계는 확인 불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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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대 의대가 "담배 소송을 낸 폐암 환자들의 흡연과 폐암 사이에 구체적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서울대 의대는 5일 폐암 환자 등이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2부에 이 같은 내용의 감정서를 전달했다.

5년째 끌고 있는 담배소송에서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는 최대 쟁점이다. 감정에는 예방의학과 조수헌.법의학과 이윤성.내과 한성구 교수 등 5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교수들은 감정서에서 "진료기록부상 원고 6명(3명은 사망)의 흡연량이나 흡연 이외의 위험인자들에 대해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개인별로 인과관계를 판단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감정서는 그러나 "현대의학은'폐암의 원인이 흡연'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역학적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학(疫學)이란 질병을 집단현상으로서 파악해 질병의 원인 등에서 법칙성을 찾아내는 의학의 한 분야다.

감정서는 "역학조사에 따른 결과는 집단에 속한 대상의 평균 폐암 위험도를 의미하는 개념"이라면서 "특정 개인이 얼마나 흡연을 했을 때 폐암의 발생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연구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역학적 연구결과를 특정 개인에게 단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원고들에 대해 개별적으로 감정한 결과 흡연과 관련성이 큰 소세포암 판정을 받은 방모씨 등 3명은 25~40년간 담배를 피워 역학적으로 볼 때 흡연이 폐암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방씨 등이 대기오염.음주.농약.목재 분진 등에 함께 노출돼 흡연만이 폐암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서울대 측은 밝혔다. 사망한 조모씨는 흡연과 관련성이 작은 샘암(폐암의 한 종류)으로 진단받았고, 비세포암으로 사망한 김모씨도 흡연과의 관련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서울대는 담배의 중독성에 대해 "니코틴은 다른 습관성 약물과 비슷한 생리적 의존성을 갖고 있으나 금연에 가장 중요한 인자가 무엇인지는 확립된 게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감정 결과는 전문가에 따라 다를 수 있어 판단에 참고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현경 <기자goodjob@joongang.co.kr>

<담배 소송 일지>

-1999년 12월:흡연 피해자, 서울중앙지법에 소송 제기

-2000년 3월:피해자들, KT&G에 연구자료 공개 요구

-2002년 4월:국립암센터 "흡연과 폐암 사이에 연관관계 있다"는 답변서 제출

-8월:한국금연운동협의회, 대전지법에 담배 연구 문서 정보공개청구소송 제기

-2004년 5월:재판부, KT&G에 문서 464건 제출 명령 및 서울대에 원고들에 대한 신체 및 진료기록 감정 의뢰

-8월:원고 측 "KT&G가 흡연 피해 알면서 은폐했다"는 보고서 제출

-11월:서울대, "흡연과 폐암의 구체적 인과관계 확인 불가능하다"는 감정서 제출

[뉴스분석] 인과관계 소극적 인정 지적도

이번 감정 결과는 원고의 폐암이 흡연 때문이란 '구체적' 인과관계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일 뿐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일반적' 인과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수백가지 의학의 가설 가운데 흡연과 폐암만큼 역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 인과관계도 드물기 때문이다. 전체 폐암의 90%는 흡연 때문으로 추정되며 일본 후생성은 지난해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폐암 발생률이 20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폐암엔 담배연기에 취약한 유전자나 석면 등 공해환경도 관여한다. 원고의 폐암이 꼭 담배연기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장 정확한 인과관계는 인체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윤리적 차원에서 인체실험은 금지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학적 인과관계는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발생률의 증가를 관찰해 규명하는 역학조사 결과를 이용해 도출할 수밖에 없다.

국내 암 사망률 1위가 바로 폐암이며 해마다 1만여명이 폐암으로 숨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번 신체감정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인정했다는 지적도 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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