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국정원직원법이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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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일 밤 늦게까지 진행된 안기부예산의 총선자금 불법 지원사건 재판은 변호인들의 퇴정 사태가 빚어져 재판부가 사건 심리를 종결(결심)하지 못했다.

재판장인 서울지법 장해창(張海昌)부장판사는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의 1심 구속기간(6개월)이 7월 2일임을 감안, 이날 재판에서 피고인이 최후 진술을 하고 검찰이 구형을 하는 결심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金전차장과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의원의 변호인들은 "지난 2월 당시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총선자금으로 인출된 1천1백97억원은 안기부 예산 불용액과 이자' 라고 말한 만큼 林장관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 변론을 종결할 수 없다" 며 항의표시로 퇴정했다.

문제는 재판부가 이날 결심을 하려 했던 것은 金전차장의 구속만료일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張판사는 " '공무상 비밀보호법' 과 국정원.검찰 등 관련 기관의 비협조로 진실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며, 이들 기관의 자발적 협조가 없는 한 심리를 계속해도 더 밝혀낼 게 없을 것" 이라고 변호인들을 설득했다.

국정원직원법은 전.현직 국정원 직원이 법정에서 증언하기 위해선 국정원장에게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 또 공무상 비밀보호법이나 국정원법에 따르면 변호인이나 재판부가 자료를 요청하더라도 국가기밀에 해당될 경우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이날 변호인단이 신청했으나 출석하지 않은 증인 8명 가운데 7명이 전직 국정원장(안기부장)과 기조실장 등이어서 국정원장의 허가가 없으면 이들은 법정에서 증언을 할 수 없다. 현재 재판부와 변호인측이 국고수표외의 안기부 자금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국정원은 기밀이라며 협조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재판부 관계자는 "林장관이 국회 정보위에서 증언한 국회 속기록도 비밀규정 때문에 제출받지 못했으며 이미 언론에 보도된 사안들도 국정원이 기밀사항이라며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며 관련 기관들의 경직된 태도를 나무랐다. 국정원 등 관계기관은 재판부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요청하는 자료 가운데 국가안보를 해치는 것이 아니면 협조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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