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형놀이서 행복 찾는 어른들 늘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만 여겨지던 테디베어와 바비인형에 빠진 어른들이 있다. '유치한 어른들' 이라고 넘겨버리기엔 너무 진지한 매니어들이다.

CF감독 진재형(42)씨는 '키요코마' 라는 5살짜리 테디베어를 '입양' 해 '키우고' 있다. 언제 어느 곳에 가든 '이 녀석' 을 데리고 다닌다. "이 녀석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복잡한 일들을 잊게 된다" 는 진씨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들은 벌써 나랑 떨어지려 하지만 이 녀석은 여행길에도 함께 하는 동반자 "라고 말한다.

지난 4월 제주도에 1백50억원을 들여 '테디베어 박물관' 을 세운 완구회사 ㈜제이에스의 김정수(50)회장은 "유행을 타는 캐릭터 인형과 달리 소박하고 정다운 표정의 테디베어는 바쁜 일상에 휴식을 주는 친구" 라며 테디베어 예찬론을 편다.

테디베어가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은 영국. 영국의 매니어들은 테디베어 '아들.딸들' 과 함께 피크닉을 간다.

전세계 2만여명의 테디베어 애호가(愛好家)들이 독일에 모였던 '2000년 테디베어 컨벤션' 에선 각국 테디베어들 간의 결혼식이 이루어졌으며 2001년 4월엔 그들의 아기 테디베어들까지 모여 대규모 행사를 벌였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테디베어 연합회' 회원들은 약 1만여명. 최근 백화점이나 문화센터에도 테디베어 강좌가 인기를 모으고, 관련 상품이나 작품전시회 등도 잇따르고 있어 국내 매니어층이 확대될 전망이다.

연합회 회원들은 최근 테디베어 제작법을 다룬 CD롬을 펴냈으며, 올해 말 한국과 일본의 유명디자이너 60인이 만든 테디베어 작품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테디베어 못지않게 매니어를 확보하고 있는 인형 중 하나가 바비인형. 지난해부터 결성되기 시작한 바비인형의 인터넷 동호회는 수백개에 달한다. '하룻밤 자고 나면 또 새 동호회가 생겼다' 고 할 정도다. 이화여대 앞 '바비오픈카페' 의 주인 정미란(35)씨는 국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바비인형 매니어. 카페엔 1백20여점의 희귀한 바비인형들로 가득 차 있다.

정씨는 "바비는 지상에서 가장 예쁜 인형이며, 인간의 창조력이 녹아 있는 예술품" 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씨는 이곳에서 매달 한번씩 매니어들만의 모임을 갖고 있으며, 올해 말에는 스스로 바비인형처럼 분장해보는 '바비 코스프레' 를 열 예정이다.

또 다른 바비 매니어 김진희(28)씨는 바비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리랜서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을 바비 인형을 위해 쓴다. 밤엔 잠옷을 입혀 함께 자고, 아침에 깨어나면 외출복으로 갈아 입힌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지만 바비와 함께 놀 때면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며 "때로는 나 자신이 바비인형처럼 화장하고 머리를 한 채 돌아다니기도 한다" 고 말했다. "주변에서 한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는 그는 "30만~40만원짜리 명품 지갑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돈으로 아름다운 바비 인형 하나를 더 사는 게 즐겁다" 고 주장했다.

김정일정신과의원 김정일 원장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 에서 톰 크루즈가 무인도에서 인형을 만들어 대화하는 것처럼 사람은 애정을 쏟는 상대를 인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고 말했다.

이어 김원장은 어린 시절에 집착하던 물건으로 다시 회귀하는 사람들에 대해 "살다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나 삶이 안정권에 들어섰을 때 과거로 돌아가려는 게 사람들의 심리" 라며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선진국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고 진단했다.

박혜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