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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일기] 돈 쏟아붓는 가뭄 대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석달 넘게 계속된 가뭄이 이틀 동안 내린 비로 해소된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 호우 피해마저 예상되자 농림부는 이제 홍수 걱정에 안절부절못한다. 정부 과천청사 3동의 중앙가뭄영농대책본부에선 벌써부터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가뭄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느새 장마 대책을 마련하느라 바빠진 모습에 묻히고 있다. 혹독한 이번 가뭄이 저수지와 하천의 바닥을 준설할 적기라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정책 집행에 시간이 걸리면서 대책본부에 걸린 상황판에는 준설 실적이 겨우 39%에 머물고 있다. 이러다가 많은 비가 내리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놓칠까봐 걱정이다.

자연 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막는 데는 물론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책본부의 간판을 '가뭄' 에서 '수해 예방' 으로 바꾼다고 해서 수해가 저절로 예방되진 않는다. 벌써부터 이번 가뭄에 파헤친 하천과 제방 때문에 물길이 바뀌어 홍수가 날 경우 피해가 크리란 걱정이 많다.

장마가 지나가면 몇차례 태풍이 닥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집중호우에 의한 농작물 침수를 대비하기 위한 농림부의 대책은 구태의연한 숫자의 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상 굴착.제방 절개에 대한 원상복구 추진 실태에 대한 일제 점검(6월 19~21일)' .

'전국 1백63개 시.군, 총 4백26개소(8백25명) 합동 점검반 편성' .

이번 가뭄 대책에만 2천7천79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만큼 이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아쉽다. 일시적이고 피해구제적인 대책보다는 내년 이후의 가뭄에 대비한 장기적인 대책과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정부의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국민성금 모금운동으로 여론이 쏠리면서 예산 타내기가 훨씬 쉬워졌다" 는 농림부 관계자의 고백을 접하며 정부의 경직된 정책 결정을 탓하기에 앞서 이제부터라도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재난대책을 고대한다. 농민들의 '타는 목마름' 이 '물에 젖은 장탄식' 으로 변하기 전에.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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