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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국 대선과 파장' 기획 시론

2.북핵 해법의 큰 틀 변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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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민들은 2004년 대선에서 지장(智將) 케리보다 용장(勇將) 부시를 택했다. 그러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케리 후보가 "군사력에 바탕을 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로 인해 미국의 동맹국들조차 미국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고 맹공을 퍼부었을 때 미국 안팎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또한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앞으로 국제사회의 중지(衆智)를 모으는 세련된 외교를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집권 2기 부시 행정부는 '반테러''반확산' 기조를 계속 유지해 나가면서도 동맹국들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스타일'의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정책을 동맹국들에 일방적으로 통고하기보다는 함께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스타일 변화가 전략 자체의 근본적 변화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대량살상무기가 들어가는 가능성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위협이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할 경우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공세주의적 경향도 계속 유지할 것이다.

북핵문제에 관한 부시 행정부의 인식이 바로 그러하다. 북한 핵이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의 극단주의 세력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제4차 6자회담에 나와 기존의 입장을 반복함으로써 지난 제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제시한 북핵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거부한다면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해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부시 행정부가 즉각 대북 무력공격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라크 사태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란 핵문제까지 불거져 나온다면 부시 행정부로서는 북핵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힘들 것이다. 그러지 않을 경우 부시 행정부는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한 뒤 단계적으로 북한을 압박해 갈 것이다. 대북 무력공격은 북한이 핵물질이나 핵무기를 다른 지역에 확산시키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관계국들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거의 다 소진된다고 동의하지 않는 이상, 현실화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 정부의 자세가 중요하다. 북핵문제가 핵폐기가 아닌 핵동결에서 사실상 끝나는 미봉적 해결은 절대로 지지할 수 없다는 점을 북측에 주지시켜야 한다.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제공할 보상책을 보다 구체화하도록 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북핵문제를 제외한 한.미관계 주요 현안들은 거의 해결된 상태다.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문제는 일단락되었고, 이라크 파병기한 연장문제는 올 연말에 큰 무리 없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할 때 한.미 양국은 이제 본격적으로 한.미동맹의 '미래'를 얘기하게 될 것이다. 한.미 간 공식협의체인 안보정책구상(SPI)을 통해 양국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졌을 때 한.미동맹의 지속 여부, 주한미군의 위상, 한.미 간의 역할분담 등을 논의할 것이다.

SPI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민간 차원의 비공식적 전략대화가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한.미 양측의 안보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 전략대화에서 나온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공식협의체인 SPI에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비전 리포트'가 나와 양국 정상에 의해 공동선언문의 형태로 한.미동맹의 비전이 제시된다면 한.미관계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미주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