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클리대 스칼라피노 교수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미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중인 본사 김민석 군사전문기자가 지난 5일 북한문제 전문가인 버클리대의 스칼라피노(82)명예교수를 만났다.

버클리대 뒷산 기슭에 자리잡은 자택에서 스칼라피노 교수는 "북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고 진단했다. 7월부터 이 학교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맡을 그는 팔순임에도 또렷한 어조로 인터뷰에 응했다.

- 최근 북한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보나.

"남북관계가 뒷걸음치는 것 같고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은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있다. 북한은 스탈린식 경제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총체적으로 망할 것이다. 북한은 정치제도를 변화시키지 않고 경제를 개혁하고 있기 때문에 'economic reform(경제개혁)' 이 아니라 'economic change(경제변화)' 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북한은 아직도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있다. 따라서 북한은 농업.에너지.관리.법률분야의 전문가를 외국에 보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최근 30여개국과 수교하고 최고인민회의가 무역을 촉진하는 가공무역법을 통과시킨 점 등을 보면 경제변화를 일단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일(金正日)은 전권을 가진 왕이나 신과 같다. 선별적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현대화한 군사만 제외하면 옛 군주제 그대로다. "

-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군사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부근에 병력을 집중 배치한 것이 남한에 위협은 되지만 남침은 하지 않을 것이다. 침공하면 한.미연합군을 끌어들이게 돼 결국은 지게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북한이 지난해 정상회담 후 남북 장관회담과 이산가족상봉 등에는 응했으나 군사문제 협상에는 부정적이다. 이는 군사력이 북한의 유일한 양보카드(bargaining chip)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유일한 카드가 군사력인 만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군사문제 협상에 대해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국방장관 회담을 공식 요청해야 한다. 또 미국이 북한 미사일에 대한 보상으로 이 문제를 종결할 수 있으면 남북 관계개선에도 기여할 것이다. "

- 남북이 견지해야 할 상호주의 수준은.

"접촉.대화 외엔 북한을 압박하는 어떤 정책도 맞지 않다. 북한이 붕괴하면 그 부담을 남한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북한에 일시에 모든 것을 요구해선 안되고, 점진적.단계적으로 상호주의를 요구해야 한다. 급속한 요구는 모든 것을 중단시킬 우려가 있다. "

- 미국이 북한에 강경한 요구를 해 결과적으로 남북관계가 나빠질 가능성은.

"그럴 위험성이 있지만 타개방안도 있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과 발사중단에 대한 보상을 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상호주의와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북.미대화의 촉진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

-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만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북한은 처음에 '남한과는 경제와 교류를, 미국과는 정치.외교문제 협상을 한다' 는 대화 전략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은 남한이 군사력 위협 등 안보문제에 대해 갖는 관심이 크고,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 지원받는 경제문제는 미국과 관련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경제도 정치와 연계돼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