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 눈물젖은 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는 '하프 타는 사람의 노래(Harfenspieler)' 라는 시가 나온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근심에 싸인 수많은 밤을/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울며 지새본 적이 없는 자/천국의 힘을 알지 못하나니…. '

고난을 상징하는 '눈물 젖은 빵' 은 일찍이 성경에 등장했다. 시편의 '주께서는 그들을 눈물의 빵으로 양육하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나이다' 는 구절이다. 시인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 는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고 노래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지 못한다" 로 알려진 괴테의 명구(名句)가 어제는 신문 정치면에 등장했다. 민주당 동교동계 이훈평 의원이 당내 '정풍파' 소장의원들을 향해 "눈물 젖은 빵을 나눠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이라고 비판했다는 것이다(본지 7일자 4면).

정풍 파문을 맞아 동교동계가 느꼈을 법한 회한 내지 억울함을 제3자가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노갑.한화갑 등 DJ사단의 쟁쟁한 인물들이 펴낸 책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을 몇 쪽만 읽어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1980년 5.17 계엄확대 후 반년간 도피하다 자수한 권노갑씨를 신군부는 '강제로 진통제까지 먹여가며' 모질게 고문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고 權씨는 책에서 술회했다.

당시 롯데삼강 노조위원장 출신 이훈평씨는 權씨를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죽도록' 얻어맞았다. DJ의 운전기사 김종선씨조차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 낼 가정환경조사서의 부친직업란을 빈 채로 두어야 했다. 그러니 동교동계가 '눈물 젖은 빵' 을 들이대는 것은 얼핏 보면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민심은 정풍파 추미애 의원이 얼마 전 민주당 의원워크숍에서 말한 "선배들의 노고와 투쟁을 국민들에게 보상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는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지금은 집권세력이고, 눈물 흘리던 처지에서 남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영국 속담은 또 이렇게 경고한다. '눈물만큼 빨리 마르는 것도 없다' 고.

노재현 정치부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