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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말하는 부실한 기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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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받으려면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해소하고 불투명한 회계자료를 개선해야 한다. 독일인인 내가 지난해 한국에 부임한 뒤 줄곧 느껴온 '부실한 기초' 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 사회의 큰 약점은 대립적인 노사관계다. 노조와 경영자는 공존의식을 가져야 한다. 노조의 활동이 왕성한 독일에도 노사갈등은 있지만 한 쪽의 이익만을 위해 전체 사회의 균형을 깨지는 않는다. 독일 기업은 노조를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인식하나 한국 기업은 그렇지 않다. 한국 노조의 기업에 대한 인식도 비슷하다.

노사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이 있어야 다른 한쪽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잊고 있다. 노사가 서로 투명한 모습을 보여주고 끊임없이 대화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관행에 비춰볼 때 사측이 먼저 노조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기업주와 노조가 가부장제도의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를 유지해선 안된다. 기업의 소유주.경영자가 노조의 존재와 역할을 존중할 때 노사관계는 실질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노사관계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독일인보다 애사심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불투명한 회계자료도 문제다. 감사보고서를 믿는 외국 기업인은 거의 없다. 한국 회사와 전략적 업무제휴를 하는 과정에서 그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검토하다 깜짝 놀랐다. 보고서 말미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본 감사보고서는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통용되는 회계원칙에 따라 재무상태와 영업활동 결과 및 현금의 흐름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한국 회계원칙과 절차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

나는 이런 상식 밖 감사보고서를 한국에 오기 전에는 본 적이 없다. 회계감사를 한 회계법인이 해외 유수의 회계법인과 업무제휴를 하고 있음을 알고 더 놀랐다. 이후 한국 기업의 감사보고서를 볼 때마다 나열된 숫자를 내 회계적 경험을 총동원해 재구성한 뒤 '진정한' 의미를 재해석하곤 했다.

한국 기업의 회계숫자와 감사보고서를 믿을 수 없다면 전반적인 신뢰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한국 정부는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높이려 애쓰고 있으나 관련 법률을 더욱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경영의 투명성은 회계 및 재무의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이런 기초가 흔들리면 노사대화가 어렵고, 주주.투자자.채권자 등의 관심과 협력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한국에선 정부 정책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그런데 장관을 너무 자주 바꿔 정책의 일관성을 믿기 힘들다.

한국인의 영어 학습법도 개선해야 한다. 외국인과 별 무리없이 대화할 수 있게 하는 실용적인 영어학습이 시급하다. 나도 영어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디트리히 폰 한쉬타인 <한국바스프 관리담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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