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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천안함 침몰] “내가 해녀였소, 우리 조카 찾으러 바다 갈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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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실종자 가족들이 28일 제2함대 사령부에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평택=김성룡 기자]

“내가 해녀 출신이오! 내가 우리 애 찾으러 직접 바다에 갈랍니다….”

천안함에 승선했다 실종된 김종헌(36) 중사의 고모는 “날씨 핑계 대지 말고 차라리 나를 보내달라”고 소리쳤다. 부산에서 평생 뱃일을 했다는 김 중사의 두 숙부도 “우리가 수색하러 가겠다”고 나섰다. 김 중사는 고 3때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부모를 잃었다. 고모와 숙부는 부모와 다름없었다. 김 중사에겐 돌 지난 아들이 있다. 결혼 7년 만에 어렵게 생긴 아이다. 고모는 “그 애를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만들 수 없다”며 “힘들어서 제대하고 싶다고 했는데 요즘 취업하기도 힘들다며 말린 내 잘못”이라고 오열했다.

28일 평택 2함대 사령부에서 천안함 실종자 가족 100여 명은 “살리지 못한다면 인양이라도 빨리 하라”며 애를 태웠다.

실종자들이 사고 전에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정종율 중사는 26일 오후 9시 아내에게 “자기야, 잘자. 나 지금 교대한다”고 전화를 했다. 배에서는 좀처럼 휴대전화를 켜지 않는 남편이 모처럼 한 전화였다. 30분 뒤 천안함은 침몰하기 시작했다. 정 중사에겐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서대호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52)씨는 사고 일주일 전 아들에게서 “이번 훈련이 끝나면 휴가 나갈 거니까 기다려. 엄마, 보고 싶어”라는 전화를 받았다. 천안함이 침몰한 바로 그 훈련이었다.

◆동명이인 이상민 병장 함께 실종=침몰한 천안함에는 같은 이름의 두 젊은이가 있었다. 스물두 살과 스물한 살, 각기 제대를 두 달과 석 달 남겨 둔 이상민 병장들이다. ‘큰 이상민’과 ‘작은 이상민’으로 불리던 두 사람은 모두 실종 상태다. 두 사람의 가족도 동명이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작은 이상민’ 병장의 아버지 이병길(62)씨는 “출항 전에 아들 생일이라 미역국을 싸가지고 온 식구가 찾아갔었는데, 그게 마지막 식사가 돼버렸다”고 했다.

딸 셋을 낳은 뒤 어렵게 얻은 막내아들이었다. 아들은 입대 전에 아르바이트로 번 용돈과 함께 통장을 한 개 쥐여주고 갔다. 군 급여 통장이었다. 입대 이후 지금까지 받은 급여를 한 푼도 쓰지 않고 통장에 모아 뒀다고 아들의 군대 상사가 전해줬다. 누나 이순희(30)씨는 “제대하면 아르바이트 해서 돈을 벌 테니 온 가족이 여행을 가자고 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병장은 청양대 호텔경영학과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9월 복학 시기를 맞추기 위해 해군에 들어간 것이었다. “생존자들에게 물어보니까 상민이가 그날 밤 당직이었대요. 깨어 있었으니 사고 대처도 빨랐을 거잖아요. 배가 가라앉아도 그 안에 3일 정도 버틸 수 있는 공기가 있다면서요….” 이 병장의 가족들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큰 이상민’ 병장은 지난해 봄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지만 본인이 희망해 천안함에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역한 그의 동료는 “상민이는 동기들과 모두 친해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배에서 안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전역 예정일은 5월 1일이었다.

평택=박성우·정선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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