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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어르신·장애인 ‘행복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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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적장애인 강민석·이동현씨(오른쪽부터)가 독거노인의 집을 찾아 봄맞이 대청소를 해주고 있다. 다른 두 명은 장애인재활원의 직업교육 교사다. [안성식 기자]

“위이이이이잉.”

24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잠원동 조길례(78) 할머니의 집. 청소기가 요란하게 돌아가며 봄맞이 대청소가 시작됐다. 아파트숲 가운데 섬처럼 자리잡은 판자촌에서 홀로 살림을 하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강민석(28·지적장애 3급)씨와 이동현(29·지적장애 3급)씨를 비롯한 4명의 ‘청소 전문요원’이 주인공이다. 이들의 손이 닿는 곳마다 찌든 때가 벗겨지고, 거미줄이 사라지는 ‘마법’이 펼쳐졌다.

할머니는 7년 전부터 허리 디스크와 심장병으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청소는커녕 밥 먹기조차 힘들다. 지난겨울에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 넘어져 입원치료까지 받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안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이고 때가 졌다. 할머니는 “기침을 하면 가래가 나오고, 목과 눈이 따끔따끔거려 얼마나 속상한지 모른다”며 “이런 도움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화장품 제조공장, 문서철 조립공장 등에서 일했으나 재미를 느끼지 못할 때였다. 그러던 중 그가 생활하는 장애인재활원에서 전문 청소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수청소기를 다루는 법은 쉽지 않았고 살균제와 찌든 때 제거제 등 약품은 볼 때마다 헷갈렸다. 하지만 보람은 있었다. 이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무 목표가 없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아픈 사람을 청소로 돕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며 “돈도 모아 결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스레인지 청소는 강씨의 몫이다. 찌든 때를 벗기는 약품을 뿌리고 수세미로 문지른 뒤 마른걸레로 닦아내는 손길이 익숙해 보인다. 그는 “이 일을 할 수 있게 돼 고민을 덜었다”고 말한다.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는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기 때문이다.

강씨는 두 살 때 형편상 그를 키울 수 없었던 부모님과 헤어졌다. 줄곧 보육원과 재활원 등에서 생활해온 그가 다시 부모님을 만나게 된 건 지난해 봄. 그러나 아버지는 병들어 있었다. 약값을 대드리고 싶었으나 문서철을 조립하는 일은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씨와 함께 청소 교육을 받았다. 다른 일보다 4~5배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강씨는 “이 일을 열심히 하면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는다.

이들은 주 3~4회 일하고 한 달에 70만~80만원을 받는다. 지난해 재활원 직업교육으로 시작해 올해부터는 서초구의 지원을 받게 됐다. 구청에서 1년에 2000만원을 재활원에 지급하고 이들은 한 해 동안 독거노인과 장애인 등 150가구를 청소하기로 했다. 독거노인은 개인적으로 이용할 때 20만원은 내야 하는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돼 좋고, 장애인들은 일자리가 생겼다.

이날 강씨의 눈에는 허리가 아파 계속 앉아 있는 할머니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는 손주 같은 이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미안해 이웃집에서 얻어온 부침개를 입에 넣어준다. “할머니, 저기 의자에 앉아서 쉬세요.” “아니 미안해서 어떻게 앉아 있누.” 실랑이가 오가는 판자촌에 봄볕이 내렸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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