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주교들은 완벽한 존재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주교회의는 지난 12일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성당 100여 곳에는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으며 일부에선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는 4대강 사업을 이명박(MB) 대통령의 탐욕으로 묘사한 선동적인 만화책을 배포했다. 4대강 사업은 건국 이래 최대의 국토개발이며 MB정권의 최대 국책사업이다. 주교회의가 성명을 내니 마치 한국 천주교 전체가 사업을 반대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천주교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볼 때 이는 국가적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적잖은 국민이 “4대강 사업에 얼마나 문제가 많기에 주교들까지 반대하나”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종교의 사회참여는 많은 경우 역사를 발전시켰다. 반독재 투쟁 시절엔 특히 그러했다. 1987년 5월 정의구현사제단은 제보를 받고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은폐·조작되었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독재항거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고 결국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70~80년대 정의로운 신부들은 정권의 횡포와 싸우면서 고문당하고 탄압받는 자들의 편에 섰다.

하지만 지금은 독재-반독재의 시대가 아니다.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정권의 횡포가 아니라 정책이다. 횡포는 한 가지 얼굴이지만 정책은 여러 얼굴이다. 횡포가 단순하고 평면적이라면 정책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횡포가 원시(原始)요 야만이라면 정책은 근대요 과학이다. 2008년 여름 쇠고기 촛불사태 때 정의구현사제단은 불법과 미신의 흙탕물에 뛰어들어 사제복을 적셨다. 사제단의 행동이 잘못이었던 것은 쇠고기 문제가 민주화 투쟁이 아니라 과학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도 논리와 과학의 문제다. 물 부족과 홍수피해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 보를 설치해도 수문(水門)이 있어 수질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지, 강바닥 준설의 부작용은 일시적인 것인지···이 모든 게 수자원·토목학의 문제다. 그런데 종교기구인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발표했다. 주교들은 수자원·토목 전문가가 아닌데 무슨 근거로 ‘치명적인 손상’이라고 판단하는가. 상당수 주교는 교구에서 사업 비판론을 주로 들을 것이다. 그렇다면 찬성론도 많이 들어봐야 한다. 그런데 총회에서 주교들이 심명필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장의 설명을 들은 건 1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물론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는 모양새에는 문제가 많다. 청와대·국토해양부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봐도 국민의 의문에 친절하게 답변한 게 거의 없다. 대통령과 관리들은 대 국민 소통보다는 일방적인 ‘믿어주세요’ 전략을 쓰고 있다. “정부가 해가 되는 일을 하겠는가. 요즘의 토목기술이 그런 부작용을 만들겠는가. 그러니 정부를 믿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자세가 잘못됐다고 과학이 잘못된 건 아니다. 정부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정부가 의존하는 과학과 기술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교회의는 보다 신중해야 했다. 국민 앞에 성명을 내놓기 전에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파고들었어야 했다. 자신들은 토목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니 정부, 정의평화위원회 신부, 토목전문가, 환경단체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서 며칠이고 토론회를 주재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주교들이 직접 외국의 개발현장도 가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지 무슨 근거로 ‘치명적인 자연손상’이라고 국민에게 얘기하는가. 독재가 사라진 이성의 시대엔 사제들도 이성적이어야 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