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 겉도는 재량학습 보충수업 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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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는 이달 초 경기도 양평의 한 수련원에 1박2일 일정으로 현장학습을 계획했다. 재량활동 교육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을 통보하자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학원을 이틀이나 빠지면 곤란하다" 는 내용이 대부분. 결국 학부모의 80% 이상이 반대해 현장학습은 무산됐다.

교육부가 학교별 특성에 맞춰 학생의 자율성을 계발한다는 목표로 지난해부터 전국에서 본격 시행 중인 재량활동이 일선 학교의 준비 부족과 학부모의 이해 부족으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 표류하는 재량활동=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역시 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해 준비했던 야외학습이 학부모의 반대로 취소됐다.

그런데도 학교측은 학생들에게 "교과 과정상 야외학습을 한 것으로 돼 있으니 상상을 해서라도 활동내용을 제출하라" 는 과제를 냈다. 학부모 崔모(50.공무원)씨는 "아이에게 가지도 않은 야외학습을 거짓말로 쓰라고 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주말에 교외에 함께 나갔다" 고 말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는 올 1학기부터 재량활동 시간에 정보통신 교육으로 컴퓨터와 빔프로젝터의 활용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러나 기자재를 구입하지 못해 칠판에 사용법을 적어놓고 암기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이처럼 재량활동이 학부모의 반발과 재정난에 부닥치자 일선 학교들이 컴퓨터나 영어교과 내용을 확대해 가르치는 식으로 변칙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보충수업이 된 셈이다.

원당초등학교 정미란(鄭美欄)교사는 "교육당국이 컴퓨터와 영어수업을 재량활동에 편입시켜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고, 기본 교과내용마저 파행 운영되고 있다" 고 말했다.

고등학교의 경우는 입시교육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도록 마련한 재량활동 시간을 자율학습으로 운영하거나 보충수업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교조의 조남규(趙南圭)교사는 "재량활동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보충수업을 신설한 셈이 됐다" 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일선 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재량활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다소간 어려움이 있다" 면서 "교사 연수를 확대하고 교재를 지원해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고 말했다.

전진배.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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