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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봉 다시 잡은 이병철, 삼성전자 설립해 돌파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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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24면

1976년 12월 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3층에 새로 문을 연 그룹 종합전산실을 이병철 당시 회장과 이건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가 둘러보고 있다.

“삼성 창립 후 지난 1~2년과 같은 고난과 시련의 역사는 없었다. 그동안 30여 년간의 사업 활동에 시달려 2선으로 물러나려 했지만 삼성이 위기에 처해 다시 기초를 든든히 하겠다는 일념으로 삼성 재건에 전력을 다하고자 한다.”

이병철·이건희 회장 부자, 은퇴 후 복귀 닮은꼴

이번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 얘기가 아니다.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복귀하면서 한 말이다. 이 전 회장도 이건희 회장처럼 경영일선에서 은퇴했다가 다시 복귀했다.

이 전 회장은 1966년 9월 22일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면서 물러났다. 그런 지 18개월 만인 68년 2월 다시 컴백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삼성에서 오너 회장의 은퇴와 복귀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얘기다. 당시 이 전 회장이 퇴진한 건 계열사인 한국비료의 밀수 파동 때문이었다. 은퇴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던 것으로 후일 밝혀졌다. 밀수가 아니라 원자재 유출 사건이었던 데다 그룹 회장이 책임질 만한 일도 아니었다. 이 전 회장이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며 은퇴 선언을 했다. 그러자 삼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너의 공백을 후임 경영자들이 제대로 메우지 못했던 것이다. 주력산업인 제당과 모직의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고, 임직원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삼성으로선 돌파구가 절실했던 시점이었다. 이 전 회장은 그런 위기감 속에서 복귀했다.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삼성물산에 개발부를 신설했다. 한국비료에 버금가는 신규 사업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삼성의 진로에 일대 전기를 마련할 사업을 찾으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온 게 전자산업 진출이었다. 돌 다리도 수십 번 두들긴 후에 건너가는 성격인 이 회장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기술이나 노동력, 부가가치, 내수, 수출 전망 등 어느 모로 보나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에 적합한 사업이라고 결정했다. 후일 반도체와 통신 진출까지 내다본 포석이었다. 이게 40년이 지난 오늘날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기반이었다. 복귀한 지 10개월 만인 69년 1월 삼성전자가 설립됐다.

이런 역사를 보건대 이건희 회장 역시 ‘빅 프로젝트’를 내놓을 공산이 크다. 반도체와 휴대전화·LCD 등에 버금가는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도전이다. 그래야만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영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이 그동안 씨앗을 뿌려놓은 산업은 여럿 있다. 헬스케어와 바이오산업은 그중 하나다. 바이오시밀러사업 진출을 선언했고, 인간유전체(게놈)정보 서비스업에도 진출했다.

의료기기도 개발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아직은 초창기다. 2차전지와 태양광 등도 본격화되지는 않았다. 아이템은 발굴했지만 어디에 얼마나 투자해 어디까지 육성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 회장이 복귀 후 결정할 과제다. 하지만 어떤 사업을 빅 프로젝트로 내놓을지는 분명치 않다. 이미 씨를 뿌려놓은 아이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반면 차세대 원전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빌 게이츠처럼 이것과는 전혀 다른 먹을거리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떤 것이든 이병철 회장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또 다른 50년을 먹여살릴 신수종산업을 심사숙고 끝에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선정하면 과감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 이병철 회장은 복귀 후 후계 구도도 정리했다.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승계하겠다는 걸 71년에 결정했다는 얘기를 후일 털어놓은 바 있다. 복귀 후 2년 만에 후계자가 결정됐다는 얘기다. 이건희 회장 역시 후계 구도 다지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에게 승계한다는 큰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다.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편법 승계 시비에서도 이제는 자유롭다. 그렇더라도 아직 남아있는 과제는 제법 있다. 우선 지분 상속이나 등기 이사 취임 등의 절차가 남아있다. 또 이 회장이 “아직 더 배워야 한다”고 밝혔듯이 경영수업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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