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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칼럼] 상용한자를 만든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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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어에 어느 정도의 한자를 남겨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한국의 친구들, 심지어 서울에 온 중국인 교수들도 내게 종종 묻는 문제다. 나는 일정한 수의 한자를 한국어에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부는 상용한자 1천8백자를 규정했다. 중.고교 과정에서 이 한자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실제 효과는 별로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련통계를 참고하면 한자 능력이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 중학생은 45.6%, 고등학생은 35.6%다.

모 유명 대학교가 2천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당히 많은 대학생이 중등학교 수준의 한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한자 문맹' 인 셈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적인 것은 현행 교과서나 신문.잡지.일반 서적 등에서 1천8백자의 상용한자마저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은 소리글자다. 가장 큰 장점은 배우기 쉽고 기록하기 편해 널리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소리가 같은 단어가 너무 많아 헷갈리기 쉽다는 결함이 있다. 하나의 언어와 이를 기록하는 문자는 차원이 다른 두 가지 사안이다. 언어는 강렬한 민족성을 띠고 있으나 문자는 얼마든지 차용해 쓸 수 있다. 한 언어의 완결성을 따질 때 중요한 기준은 간결함과 정확성이다.

한국 문자는 간결한 한글에 뜻글자인 한자를 섞어 완벽한 표현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점이 교육부가 상용한자를 제정한 본래의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와 신문.잡지 등에서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국어사용 능력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서울에 온 중국인 교수들은 대부분 국립중앙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 서울대학의 규장각 등에 들르게 마련이다. 이런 곳에서 한국의 국가소유 전적이나 대학의 고전적을 볼 때마다 그 풍부함에 놀라는 게 나만의 일이 아니다. 고대 분류법에 의한 경(經).사(史).자(子).집(集), 현대의 문.사.철.정치.경제 등 다방면에 걸쳐 모두 갖췄다.

2천년 전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 와 최치원.이제현.이퇴계.이율곡 등 뛰어난 인물들의 명저들을 보면서 찬탄을 금치 못한다. 그냥 아무거나 주워들어도 국보급으로 느껴지는 소중한 판본들이 즐비하다. 한민족이 유구한 문화전통을 지닌 훌륭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많은 장점을 갖췄으나 일반적으로 볼 때 자기 민족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빈약하다. 한국의 왕조, 각 왕조의 개국조, 학술사의 유명인물과 저작 등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심지어 어느 학생은 서울에 '퇴계로' 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퇴계 선생이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현재의 대학생이 보여주는 역사지식과 내가 직접 눈으로 본 한국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문화사적 배경이 이렇게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대학생들이 이미 한자로 기록된 고전적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대학생들과 한국의 문화유산에 건널 수 없는 골이 생긴 것이다. 매우 유감스런 일이자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한국어의 동음어에 얽힌 일화다. 서울에 온 한 중국교수는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는 '소화' 라는 사실을 찾아 냈으나 교실과 식당.시장 등 도처에 자신의 이름인 '소화' 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나중에 수많은 장소에 쓰여 있는 '소화' 가 소화전을 알리는 '消火' 였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씁쓰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사전에 '소화' 라고 적을 수 있는 낱말이 '消化' '笑話' '小花' 등 여러 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한 번 더 당황했다고 했다.

한국어의 동음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자를 붙이든가, 아니면 단어가 사용되는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단어 자체가 독립적으로 쓰였을 경우 50년이나 1백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상황 설명 없이 이 단어를 적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소화계통' 이 불 끄는 '消火' 인지 밥 먹은 뒤의 '消化' 인지 쉽게 가려질 수 있겠는가. 언어이론적 측면과 실행이란 측면에서 한국어에 한자가 적정량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양두안즈 성균관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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